여름방학입니다.

짜증나는 보충수업과 10년만의 더위에 학생들 모두가 지쳐갈 즈음 청년고등학교는 같은 지역의 아미여고와 공동 가을축제를 위한 교류를 시작하였습니다.

숨 막히는 더위를 식혀주는 소나기처럼 여학생들과의 만남은 청년고등학교에 활력을 불어 넣었습니다.

짜잔~

그렇게 공자와 노자는 서시를 만났습니다.

아미여고 클래식 기타반의 킹카로 소문난 그녀는 공자와 노자보다 학년이 높은 3학년이었습니다. 섹시하고 열정적이면서도 공주 스타일인 그녀는 이미 수시모집으로 대학에 들어갔기 때문에 축제 준비에만 전념하며 자주 청년고등학교를 방문했지요.

공자도 노자도 그녀에게 끌렸습니다. 아니 사랑에 빠졌습니다.

첫 기회는 공자에게 왔습니다.

청년고등학교의 학생 대표로 서시와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던 그는 예의 성실한 태도와 수줍은 미소로 그녀의 호감을 샀지요.

더구나 공자는 키가 185cm 에다 꽤 솜씨있는 재즈 기타리스트였습니다.(실제로 공자는 9척 장신에 가야금의 명인이었습니다.) 공자는 흔한 범생이와는 달랐지요.

공자와 서시의 관계가 심상치 않자 청년고의 내노라하는 선수들도 “작업”을 포기했습니다.

그때 노자가 나섰습니다.

우선 그는 청년고를 찾아오는 서시를 학교 문앞에서 만나 이렇게 선전포고했지요.

“이번 여름, 누나와 기차 여행을 가고 싶다.”

다음날 아미여고 방송국에 잠입한 그는 점심 시간에 이런 노래를 불러 작업에 들어갔음을 양교에 공식화했습니다.

“노자는 노자는~

서시를 유혹하네.

딱 걸렸네.

삐~~~~(방송 불가 판정)

서시와 노자의 눈맞은 이야기~”

그는 쫓아 다녔고 편지를 썼고 이벤트도 준비했습니다.

그는 자기 감정에 솔직했지요.

(실제 노자 도덕경 6장을 보면 상징적으로 해석할 부분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노골적인 여성성에 대한 묘사가 있습니다. 노자는 아마도 페미니스트였던 것 같습니다.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골짜기의 신은 죽지 않으니 이를 일컬어 깊은 여성성이라고 한다.

깊은 여성성에는 문이 있으니 이를 일컬어 천지의 뿌리라고 한다.

이어지고 또 이어져 아무리 써도 결코 마르지 않구나.

공자보다 앞서 살았던 노자의 시대는 더 봉건적이었을 텐데 그 시대에 공식적 문헌에 이렇게 노골적인 표현이 가능했는지 참 의문입니다.)

“연하라서 싫다.” 서시는 공자, 노자와 헤어진 이유를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그녀는 아마도 공자를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공자도 분명 서시를 사랑했지만 그는 항상 예의를 지켰고 자기에게 주어진 학생대표의 역할에 충실하여 학교 공동체의 공익에 맞춰 판단했으며 눈을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축제가 끝나고 그들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끝났습니다.

청년고등학교에도 낙엽이 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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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괜히 연재를 시작했다 싶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분에 넘치는 일을 시작하고는 겨우겨우 뒷막음을 합니다.

공자도 노자도 그 특성을 잘 그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과학적 사고로 대표되는 헬레니즘과 영성과 신학적 겸손함으로 대표되는 헤브라이즘이 현재의 서구문명을 낳았다고들 합니다.

동양에는 유가와 도가가 있습니다.

유교는 인간에 대한 믿음에 기초해 인간의 긍정적 변화가능성을 추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 없이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군자”를 이상적 인간형으로 그리지요.

도교는 무위자연을 주장합니다. 유교적 인본주의의 오만을 견제하며 자연의 섭리에 따르지요. 유교의 딱딱함을 항상 역설적 패러디로 조소합니다.

유교는 상류층의 사상이었습니다. 상류층은 대개 자신에 대한 통제력이 강한 사람들이고, 그들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잘 합니다. 인간의 능력에 대한 신뢰도 강한 편이죠.

사회의 하류층들은 예를 갖춰라, 공부해라, 성실해라, 일찍 일어나라 하는 가르침을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먹고 살기 바뿐데 뭔 놈의 성찰입니까? 그들은 네 생긴대로 사는 것이 마음 편한 것이라는 도교의 조언에 위안합니다. 공부보다는 노래하고, 춤 추고, 그림 그리고 하는 노는 것이 더 좋지요.

그래서 도가가 피지배층과 예술 분야에서 사랑 받은 모양입니다.

대부분 묻습니다.

무엇이 옳은가요?

둘 다 맞고 또 둘 다 틀립니다.

장구한 동양의 역사는 백가의 사상들 중에서 왜 이 두가지 사상을 선택했을까요?

이 두가지의 적절한 조화 속에 아름다운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맞는 균형점을 찾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최적화된 균형점”이라고 부릅니다.

명심하세요. 균형점을 찾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