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길라잡이 2기 권수현 회원을 소개합니다.



권수현회원은 KYC2030유권자운동을 통해서도 활발한 활동 하였습니다.



그럼 지금 부터 만나러 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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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권 수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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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 별명에 얽힌 이야기가 있으면 더 좋아요~



중학교 때: ‘삼삼이’

고등학교 때” ‘오이’

대학교 때: ‘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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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는 동네는?



일산에 살지요. 아부지께서는 매우 살기 좋은 동네라고 마구 좋아라하시지만… 전 증말… 집에 갈 때 짬뽕날 때가 많습니다.

잠만 자고 매일 서울로 나와야 하는 저는 일산은 ‘너무도 먼 당신’이거든요. 친구들이랑 오랜만에? 술 한잔 기울이다가도 10시만 넘으면 집에갈 걱정이 앞서구요. 덕분에 새벽을 뜬 눈으로 지새며 소주잔을 기울이거나,, 일주일 용돈을 택시비에다 쏟아부은 적도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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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C와는 어떤 인연으로 알고 활동하시게 되었나요?



kyc보다 ‘평화길라잡이’를 통한 만남이 먼저였습니다. 문득 인터넷으로 ‘평화’라는 단어를 검색하다가 2기 평화길라잡이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고 또 문득 지원을 했고, 시간이 흘러서 보니 평화길라잡이가 되어있더군요. ㅋㅋ

서울kyc의 회원으로, 평화길라잡이라는 이름으로 장충동 kyc사무국에 첫 걸음을 하게 되었는데 지금 kyc는 제게 매우 설레는 공간이자 편안한 공간입니다.

집 냉장고에 맛있는 먹을거리가 남아있거나, 또는 음식을 준비하고 난 후가 되면, 남겨서 kyc식구들과 나눠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한 웅큼 싸오는 가족같은 존재가 돼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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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길라잡이로서 보람을 느꼈던 일, 힘들었던 일 등..



멋 모르고 시작했어요. 민망하지만 진짜로…

요즘까지 추운 겨울엔… 서대문 형무소를 안내하려니 지금도 눈 앞이 캄캄하지만 그래도 너무 설레고요. 매일매일,,, 좀더 많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하지요.

가끔 귀찮기도 하고 바쁠때마다 힘겹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내를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어요.

평화 길라잡이 안내 활동이 제겐 매우 ‘미래 지향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돈이 아닌 내 의지와 노력으로만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으니 값진 장사(?)잖아요. (특히 내가 베푼 만큼 신께선 내 주머니의 더 많은 돈을 채워주실거라 믿기 때문에 결국 돈을 버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이 일은 나의 성의와 열정만 있다면 평생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분이 좋아지는거에요. 제가 만약 30년후에도 평화 길라잡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중후한 멋을 가진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마구 솟구치면서 뿌듯해집니다.

미래의 멋진 나를 위해 지금부터 준비하는 중입니당. 평화 길라잡이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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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길라잡이들에게 하고픈 말은?



끝까지 힘내세요. 지금부터 제 얘기를 들어보시고..

얼마전에 3기 발대식이 있었지요? 저는 발대식을 마친 후… 3월이 지나서 까지 모니터링과 부분 안내 절차도 제대로 끝내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1,2월이 바쁘기도 했었고 작년 이 맘때 제가 스키장갔다가 발목 인대가 늘어나서 한 달동안 깁스하고 집 밖을 못 나갔거든요. 그리고 4월부터 남은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 때까지..저도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었어요. 그냥 시간 날때마다 서대문 형무소 가기로 했었죠. 안 되더라도…> 그런식으로  슬그머니 시작했더니 또 욕심이 슬금슬금 나기 시작했고… 저는 5월 중순, 수료식이 있는 날에도 서대문 형무소에서 마지막 ‘전체안내’ 횟수를 채우고 부랴부랴 달려갔더랬습니다.

후문에 의하면… 저 없을 때 평화 운영회의 때 제 얘기가 나왔을 정도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권수현 선생님은 안타깝지만 수료를 못 할 것 같다”라고요.ㅋㅋㅋ 제가 그 후문을 완전히 뒤집었지요.

지금와서 놓치면 너무 아깝잖아요… 한창 모니터링중이신 3기 선생님… 절대 놓치지 마세요. 저처럼 고생하지도 마시구요.

실은 걱정도 안 합니다. 3기 완전 열정적이라서. 오히려 위협적이라서 걱정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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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후보들를 면접해보신 소감?(2030 대선유권자운동기획팀 활동을 마친 소감)



2007년 17대 대선이 많은 사람들에겐 따분하고 밋밋한 선거라고 하지만.. 적어도 저에게 2007대선은 블루 오션 같은 공간이었어요.

정치라고는 전혀 모르던 제가… 선거 기간 동안 각 정당 캠프를 찾아다니며 일 한 것을 생각하면 솔직히 아직까지도 제가 의심스럽구요.

기획일을 처음 해 봤는데 재미있다는 생각도 처음 했습니다. 제 자신의 또 다른 면모를 보는 기회가 되어서 너무 좋았어요.

게다가…저는 원래 ‘아나운서’ 지망생 소녀였는데요. 그 동안 일이 쉽게 풀리지는 않아서 고난의 행보를 하다가 겸사겸사 쉬엄쉬엄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는데 결국 제가 준비한 일에 진행을 하고 있지 뭐에요.< 제가 진행하고 싶다고 한 거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없어서…>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나의 꿈을 누구도 펼칠 기회를 주지 않아서 안달복달 하다가… 결국은 제 손으로 멍석 깔고 출연자와 방청객 불러모아놓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된 꼴(?)이 되었습니다.

뿌듯합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을 좀더 깊이 심어주어서요.

‘ 청년세대의 희망, 대표 조직 kyc’ ..이라는 말.. 적어도 제게는 맞는 말이에요. kyc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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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버릇은? 고치고 싶은데 잘 안되는 습관은? 성격은 어떠신가요?



버릇은 아니지만, 정말 고치고 싶은 한가지가 있지요( 수십개지만 가장 절실한 하나!!)

전 정말 껄껄껄 잘 웃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다정한 편입니다. 웃고 싶을 땐 거침없이 웃고 살아서 그건 너무 좋은데요… 언제 그랬냐는 듯 어떨 땐 정말 냉소적으로 변할 때도 있어요. 특히나 집 문을 들어서면요.

지금껏 살면서 부모님께 ‘사랑합니다’ 말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아니… 그런 비슷한 말 자체를요. 왜냐면 집에 들어서면 입을 닫아버리거든요. 제 하나뿐인 동생… 8살이나 어린 여동생이 있는데… 혈기 왕성한 이 아이가 제게 100마디를 할 때 전 겨우 한 두마디 한답니다. ‘몰라..’ ‘피곤해’ ‘알아서해’ ‘말시키지마’ 뭐 이렇게요.

집에만 가면 변신하는 저의 이런 이상한 버릇?때문에. 제 동생은 이제 제게 대답 듣기를 포기하고 혼자 중얼거리는 버릇이 생기기도 했답니다.

가장 가까운 나의 가족, 가장 소중한 내 가족에게 나의 사랑을 표현하는 게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거 잘 아는데 왜 이렇게 안 되는지 모르겠네요. 밖에 나와선 참 친절한 데 말이죠… 이중 인격인가바요. ㅡ.ㅜ

지금 당장 곁에 있는 가족에게 조금만더 애정 표시를 하고 감사 인사를 하고 싶은데… 입에 자크 채워졌어요. 말초적으로…

저의 이런 나쁜 버릇 고칠 수 있는  좋은 방법 아시나요? 아시는 분.좀 알려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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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성격을 소개한다면?



끝내줘요.ㅋㅋ

넝담이구요.

잘 웃고 즐거워요 항상.

근데 문제는… 가끔 욱!!하는 성격이 있다는거… 또 웃지 않을 때는 매우 차가워져서 사람들이 당황스럽고 무섭대요. ㅜ.ㅠ

그리고,  칠칠맞지 못하고 덜렁대는 면모가 매우 출중해서… … 제  주변인들이 매우 힘들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합니다. 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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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인물은? 그 이유도 얘기해주세요.



생각해보면 저는 존경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수두룩하지만..

초등학교 시절 항상 이야기했던 고전적인 의미의 존경의 인물을 뽑아볼게요.

‘헬렌 켈러’

눈과 귀와 입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랐었고 그 와중에서도 무언가를 이뤄갈 수 있다는 게 제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전 어릴 적에… 끈기라고는 실오라기 만큼도 모르던 아이여서 너무 대단해보였어요.

그리고 지금도… 장애를 가지고도 힘들어도 즐겁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을 넘어 경이로워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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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치 않은 경험을 하신 적이 있나요?



중학교 1학년때부터 집을 나왔다. ???

제가 어릴적 사는 곳에 기숙사 고등학교가 있었어요. <민족사관학교와 아주 유사한…그렇다고 그 정도로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던,,>

저도 그 고등학교 가고 싶어했는데… 마침 아버지와 고등학교 교감선생님의 친분 때문에 저는 부속 중학교를 다니며 그 곳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살게 되엇어요. 고등학교 언니, 오빠들 가운데 중학생 저 혼자 였죠.ㅋㅋㅋ 집에 엄마보러 2주에 한번씩 가고 손빨래하고 교복 단추 꾀매고 청소하고…

공부 하기 싫어서 담 넘다 걸리고 야간 자습 땡땡이 치다 걸려서 만날 대걸레 청소하고 사감 선생님께 몽둥이로 맞고… 중학교 3년 동안이 제겐 군대랑 비슷했어요.ㅋㅋㅋ

그런데 고등학교 올라가니 제가 기숙사 왕고가 되어있었어요. 그래서 고 3년 동안은 편하게 또 즐기면서 고등학교 3년을 보내기도 했죠. 또 대학교 4년동안 혼자 자취 생활을 했어요.

그렇게 집 떠나 보낸 시간, 10년!! 제게 책임감과 생활력을 길러줄만한 경험들고 가득찬, 의미깊은 시간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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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여행은? 여행하고 싶은 곳은?



요즘은 너무나 잘 알려지고 익숙한 ‘인도’

2002년 1월, 인도를 다녀왔습니다. ( 이 때만 해도 파키스탄과의 분쟁이 한창이어서 적어도 여자인 저는 가지 말아야할 곳이었어요.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이 우리집 찾아와서 용돈 주면서 말렸어요.ㅋ)

제가 인도여행을 떠올리며 기억에 남는 건… 인도의 수 많은 볼거리가 아닙니다. 왜냐면 저는 보러 다니지 않았거든요. 돌아다니다 보니 도시와 도시 사이가 멀어서 귀찮기도 하고… 

거기서 만났던 사람들이 기억에 남아요. 저는 대체로 아시아인보다는 유럽인이나 미국인과 친하게 지냈는데…거기서 만난 한 네덜란드인과는 같은 숙소에서, 같이 하루종일 자전거 타고 다니고…연분날 뻔 했죠.ㅋ 그리고 콜카타에 머무르면서 마더테레사 수녀 하우스에서 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도 일이 힘들었거나 특별한 기억이 남는다기 보다는… 거기서 만나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너무 떠올라요. 일이 끝나고 오후 6시쯤 되면… 옥상에 다같이 올라가서 인도전통차<짜이>와 텁텁한 비스킷을 먹으면서 석양을 등뒤로 떠들썩한 수다판을벌이곤 했는데.. 자유로움의 극치였어요.

혹시 여러분께서도 인도 여행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kyc사무국으로 전화를 주십시오. kyc본부에 최융선 간사님께서 자세한 상담 해주실 겁니다. (흐흐 1년 있다 오셨대요. 저는 명함도 못 내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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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하고 싶은 일 ,직업은?



아직은 아니지만 결국엔 미디어 종사자가 되고 싶어요. 특히 방송 분야에서 일하길 원합니다.

방송 진행자라는 직업. 누군가는 요즘 한창 잘 나가는 인기 직종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또다른 연예계라고 하고 또 다른이는 겉으론 화려해보이지만 매우 까다롭고 힘든 일이라고 하더라구요.

저는… 이 직업이 인기있기 전부터 하고 싶은 일이었고, 화려함보다는 힘듦 작업들을 더 많이 끌어모아서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스튜디오 안에서만 말하는 진행자말고 직접 시청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솔선수범과 적극성을 가진 사람이고 싶어요. 또 쓰여있는 것대로 시키는 대로 하는 진행자말고 직접 제작에 참여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진심으로 전달할 수 있는 진행자이고 싶어요. ‘작업 전반을 참여하는 적극적인 진행자’, ‘스튜디오 밖 빛과 그늘을 함께 짊어지고 사람 목소리를 듣는 진행자’가 되는 것이 저의 꿈이고 비전입니다. 언젠가는 여러분의 목소리를 들으러 제가 찾아갈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중에….매체에서 저를 보실 수 있으실 거에요.

비록 지금은 미미하지만 결국은 창대해지리라!!! 홍홍~~~기대해 주세요.

참, 여러분의 꿈은 무엇인가요 ? 듣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