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우는 합천에는 한국에서 유일한 “원폭피해자 복지관”이 있다.

그곳에 거주하시는 80여분의 원폭피해자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주가 되고, 말벗이 되는 것을 시작으로, 그분들의 생애를 구술증언 기록하여 핵무기의 참상과 원폭피해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 대구KYC 평화길라잡들이 “나가사키로 평화기행”을 떠났다.

나가사키에서 조선인을 기억하는 사람들

한수산의 소설 까마귀의 무대가 되는 하시마 탄광,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나가사키 항에서 배를 탄지 30분 후 우리에게 강제연행과 노동으로 잘 알려진 미쯔비시조선의 본거지인 타카즈마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다시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배를 빌려서 군칸지마로 향했다.

군칸지마에 위치한 하시마 탄광은 석탄의 내장량이 많고 질이 좋아 군수물자의 중요 공급원으로 조선인과 중국인 징용자들이 작업에 동원되었고 피폭당시 엄청난 피해를 받은 곳이라고 한다.

이곳을 안내하는 시바토 토시야끼(자원봉사자)씨는

“쿤칸지마는 살아있는 지옥이다. 조선사람, 중국 사람들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다. 일본사람중에도 돈없고, 못배운 사람들이 생계의 마지막 수단으로 선택하는 곳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시바토씨의 아버지도 이곳 출신으로 일본이 쿤칸지마의 아픔을 모른채 살아가는 것은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진정한 의미를 져버리는 것이라고 강조하신다. 피폭이 이루어진 뒤 하시마 탄광에서 살아나온 이들이 없었고, 전쟁이 종결된 뒤 이 탄광이 폐쇄될때 관련기록들은 모두 소각됐다고 한다. 또한 그 뒤로 섬은 출입이 통제됐다.

바다위에 불쑥 솟아있는 쿤칸지마는 완전 폐허로 변해서 지금은 흉물스런 회색의 섬이 되었다. 그곳에서 강제징용과 피폭의 고통을 당한 조선인의 이야기는 시바토씨와 같은 자원봉사자 없이는 전혀 들을 수 없는 전설이 되어가고 있었다.

시바토씨가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오카마사하루 기념관을 찾았다. 이곳은 정부의 재정지원없이 자원봉사자들로 운영되는 곳으로 피폭지 나가사키의 또다른 얼굴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어색한 한국말 “안녕하세요, 잘 오셨습니다”라고 우리를 맞아주신 다카자네(기념관 이사장)씨는 우리 이웃에서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인상 좋은 할아버지였다.

오카마사하루 기념관은 규모는 작고 초라하지만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조선강점과 조선인 강제연행, 위안부 코너, 일본이 벌인 침략전쟁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입구에는 평화기행단 중에서 누구도 알지 못했던 조선인 영정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고 그 아래 ‘故 박민규’라는 이름이 붙어있었다.

다카자네씨가 기억하는 박민규씨는 “조선인 피폭자로써, 나가사키를 찾는 세계 사람들에게 일본의 침략전쟁과 조선인 강제연행, 피폭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이야기 하는 사람“이었다.

박민규씨가 작년에 돌아가시고 이제는 조선역사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큰 걱정이라고 했다.

역사를 올바로 기억하지 않고 한일우호, 중일 우호가 성립될 수 있을까?

다카자네씨는 “일본이 진정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가해의 역사도 기록하고 바르게 전달해야 한다.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는 장소가 너무 부족하다”며 이 기념관에 많은 일본인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셨다.

그리고 “8월 9일 아침 7시 30분에 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모 집회가 있습니다. 그곳에 여러분들이 꼭 참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기셨다.

한반도에서도 기억되지 못하고 있는 조선인 피폭자 추모식에 “우리”를 초대한다는 것이었다. 순간 적막이 흘렀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이 무거운 분위기. 우리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침략전쟁에 대한 사과와 피해보상 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입장과 상관없이 오랜 세월 고통받고 소외받아온 조선인들의 삶을 생생히 마주하고 있는, 특별한 일본사람들을 만나는 그 자리가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졌다. 가해의 역사를 뒤로한 채 피해자로써의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를 기억하는 일본을 비판했던 우리들은 역사의 진실과 피해자_특히 조선인 피폭자_들의 고통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연대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본다. 원폭이 투하된지 올해로 62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조선인 원폭피해자의 존재와 그들의 고통에 대해서 애써 외면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전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장 곽귀훈씨는 “조선인 피폭자는 식민지, 피폭, 방치, 무관심의 4중고를 겪었다”고 한다. 전쟁의 피해자였던 그들의 아픔을 외면한 우리들도 어쩌면 소리없는 가해자였는지 모른다.

나가사키 평화공원 밖 구석에 초라하게 세워져 있는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일본사람이 운집해 있었다. 헌화를 위해 길게 늘어선 줄에는 남녀노소 할 것없이 평온하다. 평화기행단은 조선식으로 제를 올리고 고통 속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생을 마감한 그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고향의 봄’을 합창했다. 이 노래를 들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핵무기 없는 세상, 원자폭탄의 참상과 피폭자들의 고통을 기억하기 위한 한국의 ‘오카마사하루 기념관’을 만들 그날을 손꼽아 본다.

2007. 8. 14. 본부 사무처 우미정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