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보법 위반자 전력을 가진 윤종세(40)씨.

“국보법 전력자는 정치하면 안되나”

[인터뷰] 한 재야운동가가 국보법 위반자가 된 사연

‘국가기밀누설, 자금수수, 회합통신, 잠입탈출, 이적표현물 소지, 편의제공, 고무찬양’

지난 98년 9월 안기부(현 국정원)에 의해 연행됐던 윤종세(40. 대전시 유성구)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죄목이다. 윤씨는 간첩혐의로 구속돼 3년6월형을 선고받고 지난 2000년 8.15특사로 풀려났다. 혹자는 법정 최저형이 7년 이상인 간첩에게 고작 3년6월형을 선고하고, 그나마 2년의 형기도 채우기 전에 석방한 이유에 의구심을 가질 것이다. 검찰과 법원이 밝힌 그가 간첩이라는 이유는 이렇다.

“지난 89년 말부터 일본인으로 위장한 북한공작원 백모(77)씨로부터 국제 우편환으로 수차례에 걸쳐 수백여 만원을 받고 국내 운동권의 통일운동 방침 및 분열상과 재야단체인 전국연합내 한총련의 위상 등 국내정세가 담긴 편지를 21차례에 걸쳐 백씨와 주고받음.”

즉 재일 북한공작원과 연계, 간첩활동을 벌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윤씨가 말하는 사연은 다르다. 윤씨는 1989년 한 신문에 독자투고를 한다. 도심 곳곳에 반공포스터가 널려 있는 현실을 지적하고 이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7.7 선언 정신과 남북 화해 조성분위기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신문을 본 재일동포가 공감한다는 편지를 보내왔고, 이를 계기로 1년 2~3차례 편지를 주고 받았다. 윤씨는 한국사회에 대해 궁금해 하는 재일동포에게 월간 <말>지의 구독신청을 해주고 전국연합 대의원대회 자료 등 책자를 보내주기도 했다. 그러던 윤씨는 1997년 초 다른 일로 일본을 방문한 차에 이 재일동포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윤씨는 첫 만남의 자리에서 그가 조총련 소속임을 알고는 더 이상의 서신교환과 만남을 거절한다.

안기부와 검찰은 재일동포가 ‘북한공작원’이라며 공작원과의 서신교환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 죄목을 적용했다. 시사 잡지나 책자를 보내주고 편지를 통해 통일운동에 대한 소회를 밝힌 것은 ‘국가기밀누설’과 ‘고무찬양’·’편의제공’이 됐다. 재일동포가 애경사 때마다 우편 소액환을 통해 보내온 돈은 공작금을 받은 것이 됐다. 또 일본을 가서 재일동포를 만난 것은 ‘잠입탈출죄’가 적용됐다.

윤씨는 “죄가 있다면 서신을 주고받고 만났던 재일동포가 북한공작원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윤씨는 이어 “재일동포의 북한공작원 여부 또한 안기부의 정보와 주장일 뿐 진위 여부는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윤씨는 조사과정에서 안기부가 1990년 초반부터 재일동포와 주고받은 편지를 모두 검열하고 도청과 미행을 해왔음을 알게 됐다. 즉 안기부는 재일동포가 북한공작원임을 알면서도 이를 십여년 가까이 알려주지 않고 방조해 보안법 위반 죄목을 하나하나 늘려왔던 셈이다.

윤씨는 지난 2002년 사면복권을 계기로 개혁당 창당을 돕고 개혁당 유성구지구당위원장을 맡는 등 제도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다. 때문에 윤씨에게 이철우 열린우리당 의원의 과거 보안법 위반 전력을 문제 삼은 정치권 공방이 누구보다도 남다르다.

이와 관련해 윤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자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민주화운동 세력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위축되고 위축된 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막상 현역의원의 보안법 위반 전력을 문제 삼은 매카시 광풍을 지켜보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비애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윤씨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보안법 폐지 반대 이유로 ‘향후에는 악용될 소지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며 “스스로 지금 악용하고 있으면서 악용 소지가 없다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윤씨는 보안법 폐지 반대론자들에 대해서도 “보안법 내용에 대해 얼마나 알고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보안법이 폐지되면 커다란 혼란이 올 것 같지만, 과거 통금해제로 자유와 생활의 풍족함을 얻었듯 생각이 크기가 넓어지고 마음의 양식이 풍부해질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윤씨는 “결국 보안법 전력자는 생각이 바뀌고 사면복권이 됐다하더라도 한나라당이 사면하지 않는 한 정치를 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며 보안법 폐지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윤씨는 정치지망생으로 현재 열린우리당 대전시당 시민사회특별위원장과 자치분권연대 행정수도건설특위장 등을 맡고 있다.

다음은 13일 윤씨와 가진 인터뷰 요지.

– 간첩 혐의로 구속되기 전 활동은?

“지난 1990년 부터 민주주의민족통일대전충남연합과 통일맞이 대전충남겨레모임 등 재야단체에서 일했다.”

– 편지를 주고받고 만났던 재일동포가 북측 공작원이라는 것은 언제 알았나.

“안기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알게 됐다.”

– 그럼 그 전에는 전혀 몰랐나.

“97년 일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재일동포가 조총련 소속이라고 밝혔었다. 당시에도 단순히 조총련 소속 동포를 만나는 것은 죄가 되지 않았지만 재야단체 간부가 조총련 소속 교포를 만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아 알게된 이상 더이상 만날 수 없고 편지교환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 뒤 단 한번도 편지를 보내거나 만난 사실이 없다.”

– 편지를 주고받았던 사람이 북한 공작원이라고 생각하나.

“안기부 정보와 자료에 근거한 것일 뿐 실제 그런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 간첩죄는 법정 최저형이 7년 이상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그런데도 3년6월형이 내려진 것은 재판부가 봐도 사건 자체가 간첩으로 몰기에 우스꽝스럽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실정법상 어쩔 수 없어 처벌했지만 재판장 재량으로 법정 최저형에서 절반을 감량했다. 이같은 판결은 당시에도 이례적인 것이었다.”

– 이철우 열린우리당 의원의 보안법 위반 전력 공방이 남달랐을 것으로 보이는데.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매카시 광풍이 이런 것이구나 새삼 느끼게 됐다. 과거 폭압적인 군사독재정권시절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편향되거나 급진적인 사고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변화된 시대상황을 인정하고 시대발전에 기여해 왔는데 일부분을 극대화해 간첩으로 모는 것은 사형선고와 다름없다. 더구나 이게 국정을 책임지는 국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현실에 심한 자괴감을 느낀다.”

– 일각에서는 과거와는 달리 국가보안법이 더이상 악용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이유로 폐지에 반대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앞으로는 악용의 소지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과거에는 악용됐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또 지금 당장 사면복권까지 된 사람의 과거 전력을 문제 삼는 것 또한 악용의 사례 아닌가. 지금 악용하고 있으면서 악용 소지가 없다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법이 존재하는 한 과거의 형벌에 의해 언제든지 당사자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밖에 없고 따라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살아 갈 수 밖에 없다. 결국 보안법 전력자는 생각이 바뀌고 사면복권이 됐다하더라도 한나라당이 사면하지 않는 한 정치를 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 출소 이후 어떤 피해를 받아 왔나.

“올 9월까지 보안관찰 처분을 받았다. 3개월에 한번씩 관할 경찰서에 생활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을 놓고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사생활까지 침해받는 것은 대단히 큰 심리적 위축을 준다. 또 나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언제든지 피해를 줄 수 있다는 피해의식으로 위축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솔직히 ‘이게 사회일원으로 사는 것인가’하는 울컥 치미는 서글픔에 눈물 흘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 하지만 보안법 폐지에 반대하는 국민여론도 적지 않다.

“반대하는 사람 중 보안법의 내용에 대해 얼마나 알고서 그러는지 모르겠다. 과거 통행금지가 해제되면 도둑이 날뛰고 큰 사회적 혼란이 올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통금해제로 얻은 것은 자유와 생활의 풍족함이었다. 보안법을 폐지하면 생각이 크기가 넓어지고 마음의 양식이 풍부해질 것으로 확신한다.”

2004/12/13 오후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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