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와 공자가 만났을 때-2

청년고등학교의 교장이 바뀌었습니다.

이름이 주춘추이고 전국이라는 호를 쓰는 젊고 열정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봉건적 서열제도가 뿌리깊었던 청년고등학교에 큰 변화가 밀려오기 시작했지요.

그 첫 조치가 반장 직선제였습니다.

2학년 3반에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실력자이지만 한번도 부딪치지 않고 서로를 존중해주던 노자와 공자가 대결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선생님의 지명으로 공자가 반장을 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이번에는 주로 뒷줄에 앉아 있는 말썽꾸러기들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노자가 출마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판은 급속히 공자쪽으로 기울었습니다.

공자의 선거본부는 대개 모범생들이고, 근면성실하고, 능력이 있었습니다. 또 재력을 갖춘 이도 있어서 금방 활력있는 조직을 만들어 선거를 치뤘지요.

더구나 “이번에 학우들의 직접 선거로 반장이 되면 선생님의 뒷치닥거리나 하던 과거와는 달리 명실상부하게 새로운 철학과 새로운 비젼으로 학급을 이끌겠다.”는 열의도 강했습니다.

하지만 노자측은 뒷자리에서 뒷다마는 많이 까고, 번뜩이는 상상력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거나 음악과 춤으로 반을 재미있게는 했어도 학급을 어떻게 이끌겠다는 비젼을 제시하고 남을 설득하는데는 다들 미숙했습니다.

특히 대부분이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 약속을 지키는 것, 공약과 정책을 연구하는 것에는 약한 말썽꾸러기들이었습니다.

선거는 별반 쟁점도 없이 공자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은근히 노자의 선전을 기대했던 대부분의 학생들 사이에 이런 평가가 돌았습니다.

“역시 무언가 책임을 지는 일이나 조직을 이끄는 일에는 공자가 낫다.”

주춘주교장의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교지를 만들자.”는 지침에 따라 교내에 대대적인 글 공모가 이뤄졌습니다.

글의 형태는 시, 수필, 논설 무엇이든지 좋다, 최고의 글을 제출한 학생에게는 “청년고등학교의 현자”이라는 칭호를 내리겠다…

3년 내내 전교 1등을 하는 3학년 1반의 관중은 “일류대학에 들어가려면 이렇게 공부하라!”는 글을 제출했습니다. 친구 포숙아와의 아름다운 우정이 유명한 학생이었지만 글은 좀 삭막하지요.

전국 논리학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바 있는 1학년 5반 명가는 “백마는 말이 아니다.”라는 논리학 논문으로 공모에 응했고, 교내 영어말하기 대회에서 1,2등을 다투는 소진과 장의는 “미국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라는 공동 사설에서 각각 “EU, 중동의 이슬람세력, 동북아가 공동 블럭을 형성하여 미국의 제국주의화에 대항해야 한다.” “국제정세와 동북아정세를 고려했을 때, 미국을 잘 활용하는 것이 한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상반된 주장을 펼쳤지요.

한때 교내 최대의 동아리였던 자원봉사반의 반장인 묵적은 “학교는 더 평화로와야 한다.”라는 자신의 활동수기를 제출했는데 그의 이타심과 자원봉사반의 철저한 규율은 정말 놀랄만하였습니다.

하지만 역시 이 공모의 백미는 노자와 공자였습니다.

공자는 짧은 한시를 제출했습니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공부하고 때로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

有朋自袁方來 不亦樂乎(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니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아니하면 어찌 군자라 아니할 것인가!)

캬! 정말 아름다운 글입니다.

“좋은 친구와 우정을 나누고, 공부하며 나를 성장시키니, 세상이 나를 알아주건 알아주지 않건 나는 행복하구나!” 이런 공자의 마음이 그대로 녹아납니다.

1등은 공자에게 돌아가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노자의 글은 자신의 좌우명으로 시작합니다.

功成而弗居 是以不去(공들여 이루되 그 공속에 살지 아니하니 이로써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공자는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면 군자라 했습니다. 이는 알아주면 좋지만 알아주지 않아도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노자는 아예 자신이 이룬 것을 고집하지 않고, 자신이 아는 것을 주장하지 않아야 도를 이룬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북녁 바다에 물고기가 있었다. 그 이름을 곤이라고 한다…”로 시작하는 소요유라는 제목의 그 거창한 글이 뒤를 이었습니다.

(원래 이 이야기는 노자가 아니라 장자 첫머리에 나옵니다. 노자나 장자나 같은 도가의 거두이므로 필자는 그냥 노자의 글이라고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물고기가 변해서 새가 되고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이 거대한 새가 구만리 장천을 날아 남쪽 바다로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주춘주교장은 이렇게 노자에게 1등상을 주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문장 하나하나가 명문입니다.

보통의 사유 범위를 넘어서는 상상력은 “자유롭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글로 보여주었지요.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아는 듯한 말투이지만 다 읽고 나면 변화무쌍한 우주에서 인간이 안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것이지를, 스스로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렇게 건방지게 겸손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노자 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는 특히 개인적으로 노자 학생이 “역설”의 묘미를 이해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있음과 없음이 사실은 하나라는 것, 욕심과 무심이 하나라는 것을 이제 17살 된 노자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습니다.

老子라는 그의 이름 그대로 어쩌면 그는 세상의 비밀을 알고 있는 매우 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자는 “청년고등학교의 현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태도는 언제 그렇듯 현인과는 거리가 먼 삐딱한 건달을 닮았습니다.

청년고등학교의 선생님과 학생들은 노자의 예술적 감수성과 자유분방한 태도, 그리고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지혜로움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공자와 노자가 만났을 때는 3편까지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