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조선인 피폭자 죽어서도 ‘푸대접’



2007 09/11   뉴스메이커 741호


대구 KYC, 나가사키 역사의 현장을 가다…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성찰하고 있는가?”

배에서 바라본 군칸지마.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는 합천에는 한국에서 유일한 ‘원폭 피해자 복지관’이 있다.

그곳에 거주하는 80여 분의 원폭 피해자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자가 되고, 말벗이 되는 것을 시작으로, 그분들이 자신의 생애를 구술로 증언한 것을 기록하여 핵무기의 참상과 원폭 피해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대구 KYC 평화 길라잡이들이 나가사키로 ‘평화 기행’을 떠났다.

강제징용 생지옥 하시마 탄광

나가사키 평화공원 밖 구석에 초라하게 서 있는 조선인희생자 추모비.

한수산의 소설 ‘까마귀’의 무대인 하시마 탄광,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나가사키 항에서 배를 타고 30분 후 강제 연행과 노동으로 잘 알려진 미쓰비시조선의 본거지인 타카즈마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다시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배를 빌려서 군칸지마로 향했다. 군칸지마에 자리 잡은 하시마 탄광은 석탄의 내장량이 많고 질이 좋아 군수물자의 중요 공급원으로 조선인과 중국인 징용자들을 작업에 동원했고 피폭 당시 엄청난 피해를 받은 곳이라고 한다. 이곳을 안내하는 시바토 토시야키씨(자원봉사자)는 “쿤칸지마는 살아 있는 지옥이다. 조선사람, 중국사람들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다. 일본사람 중에도 돈 없고, 못 배운 사람들이 생계의 마지막 수단으로 선택하는 곳이다”라고 말했다. 시바토씨의 아버지도 이곳 출신으로 일본이 쿤칸지마의 아픔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은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진정한 의미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피폭 후 하시마 탄광에서 살아나온 이들이 없었고, 전쟁이 끝나고 탄광을 폐쇄할 때 관련 기록들을 모두 소각했다고 한다. 그 뒤로 섬의 출입도 통제됐다.

바다 위에 불쑥 솟아 있는 쿤칸지마는 완전히 폐허로 변해서 지금은 흉물스런 회색의 섬이 되었다. 그곳에서 강제징용과 피폭의 고통을 당한 조선인의 이야기는 시바토씨와 같은 자원봉사자 없이는 전혀 들을 수 없는 전설이 되어가고 있었다.

시바토씨가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오카마사하루 기념관을 찾았다. 이곳은 정부의 재정지원 없이 자원봉사자들로 운영하는 곳으로 피폭지 나가사키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어색한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잘 오셨습니다”라고 우리를 맞아준 다카자네씨(기념관 이사장)는 우리 이웃에서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인상 좋은 할아버지였다.

오카마사하루 기념관은 규모는 작고 초라하지만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조선강점과 조선인 강제연행, 위안부 모습, 일본이 벌인 침략전쟁의 실상 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입구에는 평화기행단 중에서 누구도 알지 못한 조선인 영정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고 그 아래 ‘故 박민규’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다카자네씨가 기억하는 박민규씨는 ‘조선인 피폭자로서, 나가사키를 찾는 세계 사람들에게 일본의 침략전쟁과 조선인 강제연행, 피폭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박민규씨가 지난해에 돌아가시고 이제는 조선 역사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큰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역사를 올바로 기억하지 않고 한·일 우호, 중·일 우호가 성립될 수 있을까? 다카자네씨는 “일본이 진정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가해의 역사도 기록하고 바르게 전달해야 한다.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는 장소가 너무 부족하다”며 이 기념관에 많은 일본인이 찾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8월 9일 아침 7시 30분에 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모 집회가 있습니다. 그곳에 여러분들이 꼭 참가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한반도에서도 기억되지 못하고 있는 조선인 피폭자 추모식에 ‘우리’를 초대한다는 것이다. 순간 적막이 흘렀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이 무거운 분위기. 우리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공원 밖 초라한 조선인 추모탑

나카사키 평화 기행 참가자들이 조선식으로 위령제를 진행했다.

침략전쟁에 대한 사과와 피해 보상을 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입장과 상관없이 오랜 세월 고통받고 소외받아온 조선인들의 삶을 생생히 마주하고 있는, 특별한 일본사람들을 만나는 그 자리가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졌다. 가해의 역사를 뒤로한 채 피해자로서의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를 기억하는 일본을 비판한 우리들은 역사의 진실과 피해자-특히 조선인 피폭자-들의 고통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연대하고 있는지 자문해본다. 원폭이 투하된 지 올해로 62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조선인 원폭 피해자의 존재와 그들의 고통을 애써 외면해 온 것이 사실이다. 전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장 곽귀훈씨는 “조선인 피폭자는 식민지, 피폭, 방치, 무관심이라는 4중고를 겪었다”고 말한다. 전쟁의 피해자인 그들의 아픔을 외면한 우리들도 어쩌면 소리 없는 가해자인지 모른다.

나가사키 평화공원 밖 구석에 초라하게 서 있는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일본사람이 운집해 있었다. 헌화를 위해 길게 늘어선 줄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평온하다. 평화기행단은 조선식으로 제를 올리고 고통 속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생을 마감한 그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고향의 봄’을 합창했다. 이 노래를 들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핵무기 없는 세상, 원자폭탄의 참상과 피폭자들의 고통을 기억하기 위한 한국의 ‘오카마사하루 기념관’을 만들 그날을 손꼽아본다.

우미정〈KYC(한국청년연합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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