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2일 (수) 19:30  



미디어다음


재외동포 ‘일제 망령에 아직도 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에 의해 포로수용소로 끌려가 감시원을 했던 조선인은 종전 후 오히려 전범으로 몰렸다. 강제징용을 당했던 조선인들이 수십 년 동안 지켜온 마을은 일본 당국에 의해 빼앗길 위기에 처했고, 폐허 더미 위에 세워져 오랜 세월 후학을 길러낸 조선인학교는 폐교 압력에 시름이 깊어 간다.

재일동포 뿐 아니라 사할린동포들도 아직까지 고국 땅을 밟지 못한 채 머나먼 동토(凍土)에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다.

해방 반세기가 지난 지금, 재외동포들의 현주소는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일제 강점기의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2일 서울 장충동 성베네딕도회 피정의집에서 열린 제2회 재외동포NGO활동가대회에서 재외동포활동가와 관계자들이 사례발표를 하고 있다.

지구촌동포청년연대가 주최한 제2회 재외동포NGO활동가대회 이틀째인 2일 ‘식민지 시기의 역사 청산과 재외동포’ 나눔 마당.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가 극우 정치인들을 중용하고 개정 헌법초안에서 군대를 인정하는 등 일본의 우경화가 극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재외동포들이 현 주소를 통해 과거청산의 실마리를 찾는 자리가 열렸다.

“BC급 전범 대부분 포로수용소 감시원…피해자 조선인이 되레 전범?”

이날 기조발제자로 나선 최봉태 일제강점하강제동원 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은 “일본과 한국이 진정한 평화우호관계를 맺기 위해 선행돼야 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진상규명이다”며 “강제동원진상규명 특별법과 같은 한국의 과거청산 노력은 일제 강점기 피해 당사자들의 목숨을 건 노력에 따른 결과다”고 평가했다.

이어 최사무국장은 “우리나라 국민인데도 방치돼왔던 존재가 재외동포다”며 “특히 조선인 중 포로수용소에서 어쩔 수 없이 감시원을 했던 조선인마저 B급, C급 전범으로 낙인찍힌 것은 그들의 권리보호 차원에서도 심각한 문제다”고 진단했다. 그에 따르면 지금까지 조사결과 이 같은 이유로 사형당한 사람만 20여 명에 이른다는 것.

최 사무국장은 또 “일제시대 피해자들의 발목을 번번하게 잡아왔던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관련 문서가 공개된 만큼 한국 정부의 책임있는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며 “사할린한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한국이 일본 정부와 성실히 교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름철 악취 진동하는 우토로 마을…11월9일 토지 주인 판가름 나”

강제철거가 임박한 우토로 마을. 강제철거는 특히 노인만 사는 16세대와 생활보호대상자 13세대 동포들에게 마치 죽으라는 소리와 같다.[사진=지구촌동포청년연대 제공]

이어진 사례 발표 대상은 우토로 마을. 이 마을은 전쟁 중 군용비행장 건설 등에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이 60년 이상 일궈온 터전이었지만 일본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결국 강제철거를 앞두고 있다.

배지원 우토로국제대책회의 사무국장은 “우토로 문제는 인종과 민족차별, 일제 강점기와 전쟁 청산 문제가 맞물려 있다”며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9일 토지소유권 소송의 승자가 누구냐 여부에 따라 우토로 마을은 절망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우토로 토지 소유권이 일개 개인에게 넘어가면 강제철거는 기정사실화되는 셈이다.

이에 배 사무국장은 “일본은 우토로 주민들이 법적으로 외국인이고 토지도 그들의 소유가 아니라는 이유로 상수도를 놓는 등의 행정 조치를 하지 않는다”며 “한국 정부가 단순히 일본 정부에게 선처를 요청하지만 말고 보다 적극적인 해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에 따르면 우토로 주민의 1/3은 아직도 전동식 우물을 사용하고 있고 하수도가 없는 마을에서는 올 여름에도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고 한다.

“쓰레기장에서 일군 학교…이제는 문 닫으라니”

우리나라 여느 아이들과 다를 것 없는 아이들. 조선학교를 나왔다는 배안 가나가와 외국인 거주지원센터 부이사장은 “조선인학교를 나오면 모두 빨갱이로 치부했던 것은 옛날 이야기다”고 전한다.[사진=지구촌동포청년연대 제공]

일본 정부가 일제 강점기 지배에 대한 역사적 책임과 강제이주의 역사를 전면 부정한 또 하나의 구체적인 사례는 에다가와 조선학교 문제다. 1940년 일본의 도쿄올림픽에 사용될 경기장 건설을 위해 강제 이주된 조선인들이 정착한 곳은 당시 쓰레기 매립지였던 에다가와 지역. 이곳에서는 현재, 땅 주인인 도쿄도가 2003년 말 토지반환 소송을 걸어 재판이 진행 중이다.

황의중 에다가와조선학교대책회의 집행위원장은 “극우인사로 유명한 이시하라 도쿄도지사가 그 간의 협상을 무시하고 갑작스레 토지반환과 그 동안 사용료로 4억엔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며 “일본 시민사회단체들도 ‘배우는 아이들을 거리에 내쫓을 수는 없다’며 부끄러워하는 사례다”고 말했다.

황 집행위원장은 “특히 에다가와 조선학교 재판사건은 북한 측이 지원하는 조총련계 학교지만 한국 사회가 처음으로 이목을 집중하고 있기에 더욱 의미있다”며 “이번 재판의 승소를 통해 그 동안 꿈적하지도 않았던 일본에게 제대로 된 역사청산의 사례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황 집행위원장은 “다만 올해 공개된 한일청구권협정 외교문서에서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조총련계 조선학교를 모두 없애달라고 요구했던 것이 밝혀져, 우리 정부의 반성도 함께 뒤따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상 받지 못하고 있는 원폭 피해자 400여 명…일본과 재협상해야”

원폭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일본의 피해보상도 중요하지만 국내에서 원폭피해자 지원특별법의 통과가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동렬 KYC(한국청년연합회) 원폭피해자지원 특별위원장은 “일본에서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원폭 피해자 2세들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지원이 시급하다”며 “국회 보건복지상임위원회를 통과한 원폭피해자 지원특별법이 반드시 본회의에서 의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서 김 특별위원장은 “합천 원폭피해자 복지관이 1996년에 개관할 때만 해도 들어오려던 피해자들이 별로 없었지만 지금은 60여 명이 대기 중인 상태다”며 “국내 원폭피해자에 대한 역사적 복원이 철저히 이뤄지고 관심이 재조명될수록 피해자들에게는 힘이 되고 일본 정부의 추가 보상까지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피폭 당시 거주지 증명을 하지 못해 보상을 못 받고 있는 피해자들이 400여 명에 이른다는 것. 현재 2000여 명은 피폭자로서 일본의 원호법에 따라 일본 정부로부터 한달에 3만4000엔씩 보상을 받고 있다.

이처럼 사례발표를 한 각 단체 대표들은 일본의 과거청산은 아직 시작도 안 한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에 더해 재외동포NGO활동가들 대부분은 “일본이 일제 강점기를 청산하지 않을 수 있었던 빌미를 제공한 것은 바로 한국 정부”라고 입을 모으며 한일협정 재협상 등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자세를 요구했다.

‘역사와 인권의 관점에서 일관되고 평등하게’를 표어로 1일부터 열린 재외동포NGO활동가대회는 3일 ‘한국 재외동포 정책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보고 4일 ‘재외동포 활동가와 함께 하는 역사기행’의 시간을 가진 이후 막을 내린다.

김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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