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6월 그날의 함성] (中)20년전 그때와 지금

2007년 6월에 맞은 민주화 항쟁 20주년은 축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록밴드와 퓨전국악, 노래패의 공연과 연극무대에 2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많은 시민들이 함께 열광했다. 이는 분명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군사독재의 악순환을 시민들의 힘으로 바꿔버렸다는 자신감일 터이다.

그러나 20년의 세월이 문제였을까? 축제에 참가한 이들의 생각은 확연히 달랐다. 그 해 대학생활을 시작한 ’87학번’들과 새내기 ’07학번’의 이야기를 들었다.

◇같은 나이, 다른 삶=대학생 심민철(20·영남대 국제통상학부) 씨는 오전 6시 40분이면 집을 나선다.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 도서관으로 가 전공 과목과 토익 공부에 매달리다 집으로 돌아오면 거의 자정. 심 씨가 일찍(?)부터 공부하는 것은 ‘졸업 이후의 삶’ 때문이다. 심 씨는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취업재수는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고 했다.

꼭 20년 전, 손종환(40·영남대 국문학과 87학번) 씨도 오전 일찍 학교로 향했지만 목적은 달랐다. 학교 집회와 도심 시위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대학 축제와 함께 자연스레 시위문화를 접했다는 손 씨는 오전 9시쯤 학교에서 열리는 규탄 집회에 동참한 뒤 오후가 되면 ‘호헌철폐’ 시위를 하기 위해 동성로로 향했다. 오후 늦게 시위가 끝나면 옛 덕산나이트 인근 주점이나 염매시장 곡주사에서 시국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셨고 밤늦게 학교로 돌아와 시민들에게 나눠줄 홍보 전단을 만들었다고 했다. 손 씨는 “수업이나 시험은 뒷전이었지만 사회적 정치적 변화에 기여했던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벅차 오른다.”고 했다.

◇재테크와 취업=40대에 접어든 87학번은 금전·직장문제, 07학번은 이성과 친구 문제, 성적·취업문제가 주된 고민이다. 한의사 신동민(40·대구한의대 87학번) 씨의 가장 큰 관심사도 ‘재테크’다. 40대가 되면서 그냥 돈을 벌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금융기관에서 일하는 후배들을 만나 상담을 받기도 했다는 것. 신 씨는 “이제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을 정리하고 돌아봐야하는 시점이 됐다.”고 했다.

송수경(20·여·경북대 경영학과) 씨는 영어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매일 오전 어학당에서 영어회화를 공부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스터디도 한다. 송 씨는 “유학까지 다녀온 친구들을 볼 때마다 훗날 입사 경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고민스럽다.”며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을 때 미리 준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은경(20·여·경북대 농업경제학과) 씨는 “선배들은 1학년 때 그저 놀았다고들 하지만 취업문제가 대두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며 “성적이 취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거의 대부분 학생들이 도서관으로 직행한다.”고 했다.

◇사회양극화가 문제=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87학번과 07학번 모두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를 꼽고 있었다. 소수 부유층의 독점과 다수 빈곤층의 확대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는 것. 손종환 씨는 “노무현 정부까지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사회적·구조적인 병폐들은 많이 없어졌지만 사회적 약자는 늘고 빈부격차는 심해지고 있다.”며 “과거 군사 정권 시절보다 오히려 계층 간의 격차와 위화감이 커지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공무원 김대현(40·여) 씨는 “저소득층은 해마다 늘고 있지만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이들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며 “먹고살기 힘들수록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이 더욱 절실하다.”고 했다. 이은지(19·영남대 약학부) 씨는 “막연하긴 하지만 우리 사회의 계층 간 구조가 톱니가 맞아들어가지 않는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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