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목포KYC “2004 DMZ 평화통일 답사”에 참가한 허진영(목포여고2) 학생의 소감문입니다.

이번 답사는 목포지역 중고생 40여명이 참가하여 8월 13일(금)∼14일(토) 경기도 북부 DMZ 일원(도라전망대, 도라산역, 철의 삼각지) 등을 둘러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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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3일은 내게 충분히 기념할만한 날이다. 태어나서 두 번째 가보는 비무장지대 답사일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간 DMZ. 어느정도 철이 들어 가보는 DMZ는 확실히 달랐다.

다른 청소년들과 함께 버스에 탈 때는 두근두근.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DMZ에 가까워질 수록 이곳은 어떤 곳이다- 라는 느낌이 점점 강하게 다가왔다. 어린 시절의 기억보다도 훨씬 더 어두웠다. 날씨 탓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자유로를 타고 통일대교로 갔다. 자유로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철조망 옆으로 가로등에 달린 단일기가 환했다.

우리는 제 3땅굴에 들어갔다 나와 도라산 전망대를 들러, 도라산 역으로 향했다. 역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제 3땅굴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았다. 캄캄한 저 속에서 인부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주변을 감상하던 것도 잠시, 어느새 도라산 역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봤던 풍경이 대립이라면, 도라산 역은 화합이다. 도라산 역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많이 내렸다. 재빨리 역 안으로 들어갔을 때 나는 웃고 싶었다. 미소가 아니라 아주 크게. 도라산 역의 제일 안쪽, 기차를 타기 위한 탑승구에는 선명하게 서울<->개성이라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경의선이 완공되면,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역의 구내매점에서는 화합을 기리는 기념품이 많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기념용으로 발행하는 기차표. 이미 날짜도 지났고, 지금은 철조망이 막고 있지만 그 표의 종점은 평양이었다. 그 아래에는 북의 인민군과 우리의 국군이 함께 손을 잡고 한반도 위에 서있는 커다란 열쇠고리도 달려 있었다. 도라산 역과 개성 공단 쪽을 찍은 사진으로 만든 핸드폰 줄도 있었다. 기차표를 살 때 넌지시 물어보니, 그 표는 철도청에서 발행하는 것인데 외국인들이 한국의 기차표라 해서 기념으로 많이 사간다라고 대답해주었다. 외국인들이 더 많이 사가는 통일을 기원하는 기차표. 왠지 다시 슬퍼졌다.

도라산 역에서 다시 단체사진을 찍고 이번엔 반구정으로 갔다. 황희가 말년을 보냈다는 반구정에도 철조망은 있었다. 이쪽 경기도 북부에는 많은 문화재나 유적들이 군사분계선 근처에 있어 관리가 쉽지 않다는 선생님의 말은 우리의 마음을 두드렸다. 실제로 반구정의 정자에 올랐을 때, 우리는 임진강과 철조망을 볼 수 있었다. 군사관계상 무단 사진 촬영을 금한다는 친절한 안내문도. 때마침 내린 소나기는 우리의 가슴을 보다 후련하게 해주었다. 소나기가 그치고, 구름 사이로 비치는 만화 속 풍경 같은 햇살은 아름다웠다.

우리는 양주 청소년 수련관에서 저녁을 먹고, 민족21의 안영민 대표로부터 북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나는 이 강의가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다른 학생들의 반응은 저조했다. 학년이 달라서일까? 강의를 마치고, OX퀴즈를 풀 때에도 그 점은 한 가지 아쉬움으로 자리 잡았다. OX퀴즈와 모둠활동을 하며 우리는 서먹했던 관계가 조금은 더 가까워짐을 알 수 있었다. 모둠 활동은 정말 재미있었다. 모둠활동이 끝나고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밥을 먹고 다시 차에 올라 철의 삼각 전적지를 향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문제로 철의 삼각 전적지의 기념관은 들리지 않고 바로 월정리 역과 백마고지 전적비로 향했다. 월정리 역은 그 유명한 “철마는 달리고 싶다”의 그 철마가 있는 역이다. 이곳은 철의 삼각 전망대가 위치해 있는데, 이곳에서 우리는 철조망 아래 고라니를 보고 경탄을 금치 못했다. 인간이 나뉘어 싸우거니 하는 동안에도 이 땅의 생명은 나름대로 자라나고 있었다. 지금은 더 평화스러운 분위기이지만, 그래도 군사분계선의 살벌한 분위기 속에 고라니는 평화를 알리고 있었다. 그리고 철조망에 막혀 그 근처를 맴도는 고라니의 모습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었다.

그 후에도 우리는 백마고지 전적비를 들려 순국선열에 대해 묵념을 올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이 답사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아직은 철이 덜든 내게도 통일은 소중했다. 분단은 우리에게 이미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같은 민족을 적대시하는 것보다 더 잔인한 일은 없다.

차에서 내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한 가지 아쉬움이 남았다. DMZ답사와 강연에서 조금은 무심한 반응을 보이는 우리의 모습이었다. 가는 길에 남북 동질성 5부작 비디오를 보여주셨지만 그래도 학생들은 반응이 시원찮았다. 오가는 따분한 차 속에서 통일을 주제로 한 노래들, 학생들이 좋아하는 가수들이 부른 통일을 바라는 노래라도 한 곡 같이 불러보았다면 참 좋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