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 31일에 서울 명동의 은행회관 국제회의실에서 한국 카리타스(Caritas Corea,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주관으로 “1994년 제네바합의 이후의 북-미관계‘라는 주제로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시카고대 석좌교수)교수의 강연이 예정되어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리고 한국 카리타스는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심도 깊은 북-미관계 분석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의 단초를 마련하고자 한다는 강연회의 취지를 밝히고 있다.

브루스 커밍스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씨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 박사의 딸 우정은교수(미시간대 정치학과)의 남편으로도 잘 알려져 있고, 또 2003년 봄,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 그룹과 공동으로 북핵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보고서를 집필, 부시 행정부에 제출하기도 한 사람이기도 하다.

왜 브루스 커밍스교수가 한국 근현대사 학계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보수적인 정부가 들어선 미국행정부가 무엇 때문에 그를 무시하지 않는가. 그것은 미국인이라는 이해관계를 떠나 학자로서의 양심을 지키며, 높은 분석력을 통해 한국사를 연구, 객관적인 역사서술을 하려는 역사학자이기에 그렇다고 필자는 믿는다. 그 사람이 정치가가 아니라 학자이기에 당연히 그럴 것이다.

브루스 커밍스는 유명한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을 통해 한국전쟁이 소련과 중공의 지원 하에 북측이 먼저 남침을 해왔다는 전통주의적인 시각을 가졌던 학자들과는 달리 태평양방면 미육군 총사령부의 ‘G2보고서’(정보보고서)까지 심도 있게 분석했다. 그는 이를 통해 6·25전쟁의 원인에 대해 남침설을 거부하고, 한국 내의 내전이라고 규정한다. 6.25 이전에 벌써 10만 이상이 살해되는 전쟁의 상황 속으로 들어가 있었으며, 1950년 6월 25일에 전면전으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또한 그 자신이 미국인이면서도 미국의 팽창주의적 대외정책과 남한 내부의 구조적 요인에서 파악한다. 즉 1945년 8·15광복 이후 1950년 6·25전쟁 이전까지 미군정이 일제시대 친일파들을 재등용하여 백성들 사이에 불만이 높았다는 점, 미국의 필요에 따라 남한에서 단독정부를 수립한 점, 국민들의 토지개혁 등 사회적 개혁요구를 묵살한 점, 신탁통치는 미국의 일관된 주장이었던 점 등을 들어 일제를 완전히 물리치지 못하고 외세에 의해 분단된 불완전한 해방이 6·25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2001년 8월 15일 필자는 평양을 방문한 바 있다. 그 때 강정구 교수라는 분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것은 강정구교수가 만경대의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라는 글을 썼고, 남쪽뉴스에 그 글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소식이 우리가 묵던 고려호텔에 전해지고 있을 즈음이었다.

그 때도 이번의 ‘6.25는 통일전쟁’이라는 말처럼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참 곤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아마도 당시 방문단원 대다수는 강정구교수가 냉전의 산물인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되길 원하지는 않았지만 국민들의 문화적 충격이 클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그 때 강정구교수가 이성보다는 감성이 대단히 앞선다는 느낌을 받았다. 열성적 반공주의자가 아니라면 경험상 만경대에 가본 사람이라면 마음이 찡하지 않을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것이다. 김일성주석이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에서 살다가 중학생의 신분에 만주로 독립운동 하러 떠난다고 나루터에서 어머니와 헤어지는 만경대의 간판그림은 상당히 감성을 자극한다고 필자도 느꼈다. 하지만 우리가 만경대의 감성에만 머물 수 없는 이유는 6.25전쟁의 참혹한 기억이 우리의 이성을 제어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강정구교수가 사고를 쳤다. ‘6.25는 북쪽이 시도한 통일전쟁’이라고 하였다. 신라, 백제, 고구려가 전쟁을 치러 신라중심으로 통일을 하였고 역사에서 통일신라라고 배우고 있는 시대구분을 고려할 때, 통일전쟁은 어떤 경우이든 6.26전쟁으로 통일이 됐을 경우 붙이는 명칭일 것이다. 그러나 강 교수가 다짜고짜 통일전쟁이라는 바람에 검찰이 구속한다고 하고 법무부장관은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지켜달라며 안 된다고 했다.

필자는 강정구교수의 감성적 발언과 사회적인 상황에 대한 냉철한 인식의 부족에 대해 비판한다. 그렇지만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구속 또한 반대한다. 그리고 감성에 흐르든, 공부가 덜 되었든 지를 떠나 확신을 가지고 있던 학자적 양심과 사상에 따라 내린 판단에 대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한다는 것은 열린시민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한국사회의 정체성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처사이다.

만약 강정구교수를 구속하려 한다면, 남침설을 거부하는 미국인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입국을 검찰이 거부해야 되지 않는가? 다시 그런 흑백논리가 지배하는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 재조나 재야를 떠나 법조계의 흐름도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