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보호입법의 방향에 대한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의 입장

진통끝에 재개된 노-사-정 대화에도 불구하고 비정규 입법안을 둘러싼 대립과 이견은 쉽사리 해소될 전망을 보이고 있지 않다. 이러한 가운데 독립기구인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주 정부의 입법안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권보호와 차별해소를 위한 대책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기간제 노동에 대한 사유제한’ 및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보장’을 골자로 하는 입법의견을 발표했다. 현 단계에서 비정규직의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의 핵심은 근로빈곤층 양산과 노동 양극화의 원인인 비정규직 사용을 억제하는 한편 임금 및 사회보장 등에서의 각종 차별을 해소하는 것에 있다. 이런점에서 국가인권위의 제안은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논의의 기준점을 마련한 것이며,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는 이에 대한 지지 의사와 함께 현재 진행중인 비정규 입법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힌다.

첫째,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은 비정규직 남용억제의 핵심적 장치이다

정부의 비정규 입법안의 핵심적인 문제점은 비정규직 남용 억제라는 목표달성의 불분명함에 있다. 파견법의 파견업종의 제한을 전면 폐지해 모든 업종에서 파견근로가 가능하도록 한 것은 그 위험성을 명백히 드러낸 것이다. 또한 아무런 규정없이 근로기준법의 1년 근로계약 조항에 따라 반복갱신되어 온 기간제 노동을 최장 3년으로 사용기간을 제한힌 법안도 ‘비정규직 남용의 억제’를 기대하기에 매우 불투명한 방안이다. 정부의 법안은 한번 계약에 3년이내에서 사용자가 자유롭게 기간제 노동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3개월 또는 6개월 등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을 발생시킬 수 있으며, 3년 이후 ‘해고금지조항 적용’을 피하기 위한 사전 계약해지 남용을 가져올 수 있는 맹점을 안고 있다. 또한 3년의 계약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정규직 또는 최소한 무기계약직으로의 ‘고용의제’ 장치를 두고 있지 않아, 상시 근로의 비정규직 대체가 반복되는 문제점을 해소시키지 못하는 방안이다. 우리는 어떠한 근거에서 정부가 이 법안을 비정규직 남용을 억제하는 법안이라 주장하는 것인지, 최소한 이 법의 제정으로 향후 노동시장에서 기간제 형태의 비정규직의 사용 추이에 대한 전망치를 제시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우리는 이 같은 의문에 대해 정부가 실질적인 반론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그 주장은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런점에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비정규직의 사용억제는 상시근로의 정규직 고용이라는 원칙에 입각해 그 사용사유를 제한 하는 것이 입법목적 및 외국의 사례들로 볼때 타당한 방안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다만, 그 사유의 범위 등에 대해서는 노동시장 현실 등을 고려해 다소 유연성을 갖고 노사정이 검토할 것을 제안한다.

둘째, 동일임금 동일노동 원칙의 명문화를 통한 실효성있는 차별해소 장치마련이 필요하다

정부의 입법안은 ‘차별금지 원칙의 명문화’와 ‘시정명령권 및 과태료 부과’, ‘차별시정 기구’를 통한 개별적 권리구제 방안만을 담고 있을뿐, 차별해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명문화를 포함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 같은 차별해소 방안이 아무런 법적 규제장치를 두고 있지 않은 현 상황에 비해 진일보한 대책이라고 주장하나, 이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개별성, 취약한 노동 3권 및 일부 대기업 노조를 제외하면 노동조합이 파트너로 인정되지 않는 노사관계의 현실 등이 반영되지 않은 추상적인 대책일 뿐이다. 계약해지의 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차별시정기구를 통해 회사와 다툴 가능성은 높지 않으며, 차별시정기구인 노동위원회 절차가 대부분은 화해, 취하로 귀결되어 온 지금까지의 실례로 볼때도 그 실효성이 의심된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해소’는 실효성없는 차별시정 기구가 아닌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법제화를 통해서 실질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다. 다만, 이를 법제화 하는 것이 상당한 연구와 기술적 검토를 요하는 일인 만큼, 법에는 원칙을 명문화하고 구체적 방안은 노사정 공동의 연구팀 구성을 통해 추후 구체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실질적인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노사정의 성숙한 대화와 합의를 촉구한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국가인권위의 의견표명 직후 이를 비전문가의 무지, 노동시장을 모르는 편견, 인권만을 생각하는 편향등으로 치부한 정부 여당의 고위직 인사들의 발언에 강한 유감의 뜻을 표한다. 우리는 오히려 이 같은 시각이 법률에 따라 설립된 독립기구인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감정적 편견이며, 경제현실을 명분으로 노동자의 인권과 차별을 구조화 시켰던 과거 성장지상주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와 여당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이 그동안 일방적인 비정규법 추진과정에서 간과되어 왔던, 핵심적 보호장치 마련을 촉구한 정부내 목소리라는 점과 이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매우 높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며, 이를 존중해야 할 것이다.

심각한 고용불안과 차별에 시달리는 비정규 노동에 대한 제도적 보호는 매우 시급한 과제이다. 그런만큼, 모처럼 마련된 노사정대화의 자리가 각자의 명분에 이끌려 무산되거나 무기한 연장되는 상황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노사정 주체가 대화의 장에 나선 만큼 성숙한 대화와 합의의 정신에 기초하여 비정규직 노동자의 인권보호와 차별해소 대책을 조속한 시일내에 마련하는 생산적 결실을 맺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그 출발점으로 노사정 주체가 공히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을 존중하고 수용할 것을 촉구한다. 특히 정부와 여당은 기존의 일방적인 법안처리 입장을 버리고 대화와 합의를 통해 이를 처리하겠다는 점을 분명히해야 할 것이며, 노동계도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기존 관성에서 벗어나 대승적 관점에서 실질적 해결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를위해 필요하다면, 현 노사정 대화의 참여주체와 그 위상을 보다 높이는 방안을 고려할 것을 권고하며, 동시에 정부가 비정규직 노동의 당사자인 양대 노총이 요청한 대통령 면담을 수용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고려할 것을 촉구한다.

2005. 4. 20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