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 퇴근 후 아무리 피곤해도 아기·엄마에게 말 한마디 꼭 ! [중앙일보]


예비 아빠 김필규 기자 `좋은 아빠 되기` 학교 가다
임신한 아내에게 마사지, 철분제 꼬박꼬박
생후 6개월부턴 고기 먹여 모유에 부족한 철분 보충






























‘아이 키우는 아버지학교 1기’참가자들이 서울 남산의 서울유스호스텔에서 22일 교육을 마친 뒤 받은 수료증을 펼쳐보이고 있다. 2기는 다음달 26일 열린다.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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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 남산 유스호스텔 소회의실에 17명의 남자가 모였다. 회사원.교사.공무원.자영업자 등 직업.배경이 다양했다. 이들이 모인 목적은 단 하나. “좋은 아빠가 되겠다”며 한국청년연합(www.kyc.or.kr )에서 마련한 ‘아이 키우는 아버지 학교’에 참여했다. 곧 아이를 보거나 한두 살 아기를 둔 초보 아버지들이다. 첫 아이(9월 예정)를 고대하는 ‘예비 아빠’ 김필규 기자가 이들과 1박2일을 함께했다.


◆아내에게 마사지를=’산모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할까’ 수업에 김은성 고운빛 산부인과 원장이 초대됐다. 강의 내내 느낀 건 ‘내가 얼마나 준비 안 된 아빠인가’라는 사실. 임신부는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고▶임신부용 엽산을 복용하고▶애완동물을 멀리해야 하는데 남편으로서 한 게 거의 없었다. 또 며칠 전 엉덩이가 아프다는 아내의 말에 “평소 자세가 나빠서 그렇다”고 핀잔을 줬는데 알고보니 아내의 골반이 늘어나면서 생긴 통증이었다.

김 원장은 손발이 저린 아내를 위해 퇴근 후 10분이라도 마사지를 해주라고 했다. 철분제 챙겨주기, 균형 잡힌 식사 등도 남편의 몫이라 했다. 아내가 남편 퇴근 맞추느라 저녁 8시 넘어 식사를 하거나 잠자리에서 간식을 들면 아기가 너무 커져 난산의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평소 몰랐던 것도 많이 배웠다. ①산모는 현기증이 많이 나니 갑자기 일어서거나 한 자세로 오래 서 있게 하지 말아야 한다. ②여성의 70%는 출산 후 우울감을 느낀다. 퇴근 후 아무리 피곤해도 곧장 잠들지 말고 아기와 부인에게 말을 건다 ③산모의 80%는 출산 후 한 달가량 성욕이 없다. 적어도 6주간은 부부생활을 참는다. ④무엇보다 중요한 건 남편의 말 한마디. 작은 일에도 “고마워, 당신 덕분이야”라고 한다.



◆아기에게 고기 많이 먹여야=’유아기 건강과 안전’ 수업은 하정훈 원장(하정훈 소아과)이 맡았다.’삐뽀삐뽀 119 소아과’의 저자라는 소개가 이어지자 참가자 모두 그의 말을 빠뜨리지 않고 적었다. 하 원장은 아빠의 ‘필수조건’으로 ▶금연▶생명보험 가입▶카시트 구입▶육아공부▶일찍 퇴근하기를 꼽았다. 특히 2차 흡연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거실에서 피우는 것도 당연 금물. 테라스에서도 얼굴을 밖으로 완전히 빼고 피우라고 당부했다.

또 모유 수유,유아식,아기 심리 등을 다룬 책을 읽어두는 것도 아빠의 기본 자세라고 했다. 밤에 자주 깨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졌다. 수많은 방법을 시도해 봤지만 밤에 아이를 푹 재우는 일에 실패했다는 것. 처방은 명료했다. 아무리 보채도 절대 젖을 물려 재우지 말라는 것. 민원만 들어오지 않는다면 사나흘 정도 울게 놔두는 것도 방법이라 했다.

태어난 지 6주가 지난 아기에게는 혼자서 자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하 원장은 다른 것 다 잊어도 ‘6개월부터는 고기를 잘 먹게 하라’는 조언은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모유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철분을 충분히 공급해야 하기 때문. ▶수은온도계 쓰지 마라▶6개월 이전엔 일광욕시키지 마라▶보행기는 가급적 쓰지 마라▶실내온도는 20~22도로 유지하라▶두 돌까지 TV 보게 하지 마라 등 숱한 ‘지침’에 기가 죽었다.















◆아기도 경험이 많을수록 똑똑=’영아기 아동의 특성과 심리’ 수업을 맡은 이원영 중앙대 교수(유아교육과)는 “아이에게 신나고 재미있는 일을 시켜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기나 성인이나 뇌를 구성하는 뉴런의 수는 140억 개로 비슷하고, 여기서 뻗어나오는 수상돌기의 수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데, 이 수상돌기를 잘 뻗게 하는 게 바로 어릴 적 풍부한 경험이라는 얘기다. 만 3세까지가 ‘가장 중요한 시기(critical period)’라고 했다.

다만 ‘나쁜’ 경험은 풍부한 경험에 포함되지 않는다. 예컨대 부부싸움도 애 앞에서 하지 말고 밖으로 나가서 하라는 것. 아이가 부모의 불편한 관계에, 그리고 스스로 사랑받는 데 많은 에너지를 쓰면 두뇌발전에 지장이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특히 아이에게 항상 말을 걸어줘야 한다. 태아도 임신 7개월만 되면 밖에서 들리는 음색을 기억하기 때문에 태명(胎名)을 붙여 자주 불러주는 게 좋다고 한다.

집중 트레이닝을 받고 나니 어느 정도 육아에 자신감이 붙는 것 같았다. 뿌듯한 마음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배운 내용을 뽐냈다. 한참을 듣던 아내가 조용히 답했다. “그래. 세상 엄마들은 다 아는 걸 이제 알았구나. 그래도 모르고 있는 것보단 낫지 뭐. 잘 배웠네. 어서 돌아와.”


김필규 기자><phil9@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 와글와글 아빠들의 고민과 수다

첫째 날 강의는 밤 11시가 넘어서 끝났다. 강의마다 쏟아지는 참가자들의 질문에 조금씩 시간이 늦어진 탓이다. 그래도 30, 40대 건장한 남성들이 모였는데 술 한잔 빠질 수 없는 법. 숙소 인근의 골뱅이집에 모여 ‘아빠들의 수다’가 이어졌다. 나이도 직업도 달랐지만 거리낌은 없었다. ‘아빠’라는 공통분모 덕분이었을 것. 아토피 치료법 등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한편 육아 때문에 하루라도 휴가를 내려면 눈치 주는 직장 분위기에 대한 성토도 이어졌다.

한국철도연구원에서 일하는 박찬우(32)씨는 아빠를 따르지 않는 아이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아이 엄마가 항공사 승무원이라 자신보다 더 많이 얼굴을 보는 것도 아닌데 유독 엄마만 따른다는 것이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나도 그렇다”며 맞장구쳤다. 자영업자인 김현(36)씨도 “분명 처음 입을 뗐을 때 한 말은 ‘아빠’였는데 지금 대하는 걸 보면 배신감 느낀다”고 거들었다.

아이 키우기 힘든 한국 사회에 대한 불만도 터져나왔다. “육아 휴직은커녕 한 달에 하루쯤 아이를 돌보는 휴가를 내주면 좋겠다” “10째 낳으면 3000만원 준다는 식의 비현실적인 내용 대신 피부에 와닿는 보조금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저마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각오’도 내놨다. “일단 담배를 끊겠다” “육아일기를 꾸준히 쓰겠다” “애 앞에서 부부싸움을 절대 하지 않겠다” “아내에게 일주일에 한번은 휴일을 주겠다”등 한마디씩 나올 때마다 “나도 그러겠다”는 호응이 이어졌다.

















2007.04.24 20:28 입력 / 2007.04.24 20:42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