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늦는 아빠’ 아이들에게 아빠를 찾아주세요
아빠 오길 얼마나 기다렸는데…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있어 아빠 곰, 엄마 곰, 아기 곰. 아빠 곰은 뚱뚱해….”

푹신한 소파에 길게 누워 오후의 나른함을 만끽하던 휴일, 네 살 짜리 딸아이가 흥얼거리는 동요 한 구절이 새삼 귀에 껄끄럽습니다. 왜 아빠 곰만 뚱뚱하지? 고된 회사 일을 핑계로 아이 보기에 소홀한 아버지들의 게으른 단면을 보여주는 것일까 싶자 갑자기 소파가 등에 배깁니다.


 


인공위성처럼 가정을 겉돌면서 귀차니스트로 일관해온 자칭 ‘불량 아빠 곰’ 십여 명이 지난 주 토요일 밤, 충무로의 한 맥줏집에 모여 앉았습니다. 한국청년연합회(대표 천준호)가 주최한 ‘아이 키우는 아버지 학교’에 참석한 사람들의 뒤풀이 자리였지요.


 


아빠들의 육아고민이 쏟아진 그날 밤, 프리의 이번 주 주제가 탄생했습니다. 어린이날을 딱 일주일 앞두고 머리 속으로 반성문을 읊고있을 아빠들을 위한 친절한 지침서이죠. 아이랑 잘 노는 법부터 가족이 함께 갈만한 물놀이공원, 버지니아공대 총격사건의 원인인 외톨이 대책에 이르기까지 아이와 함께 하는 행복 노하우를 담았습니다.[편집자주]


 





아빠는 하루 3번 운다?


 


▲박찬우(34ㆍ금천구 시흥1동)= 지난 여름휴가 때였어요. 아내와 휴가가 겹치지 않아 혼자서 6개월 된 딸을 봤죠. 남자는 평생 3번 운다지만 아이를 보는 아빠는 하루에 3번 웁니다. 첫 번째는 아이가 울음을 멈추지 않으니까 당황해서 울었구요, 두 번째는 울다가 토한 아이의 옷을 갈아 입히려다 빨아놓은 옷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황당해 울었죠. 마지막으로 퇴근한 아내를 보니 하도 반가워서 목놓아 울었어요. 아이 보는 게 장난이 아니에요.


 


▲김태응(35ㆍ충남 천안시)= 그래도 말 못하는 아기 때가 나아요. 우리 애는 동화책을 읽어줘야 잠드는 버릇이 있는데 하루는 제가 동화책을 읽다가 잠시 졸았나 봐요. 아이가 “아빠, 똑바로 읽어”라며 야단을 치네요. 하루 종일 일하고 나도 피곤한데 아이 호통을 들으니 미안한 만큼 야속하기도 하던데요.


 


▲김 현(37ㆍ경기도 김포)= 요즘 애들 못 당해요. 아이가 뻔히 아는 내용을 물어보면서 대답을 못하면 ‘씨익’ 웃는 게 꼭 아빠를 시험하려는 것 같아요. 어른 체면에 창피하기도 하고, 당황스럽죠.


 


▲천준호(38ㆍ도봉구 창동)= 하하, 오랜만에 맘 잡고 아이를 보려고 했는데 막상 닥치니 우왕좌왕 대처하기 쉽지 않지요. 사실 육아법은 누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엄마들처럼 몸으로 부대끼면서 깨쳐가야 하는데 아빠들은 그럴 기회가 거의 없잖아요. 의지도 희박하고.


 


▲이호근(38ㆍ마포구 마포동)= 맞습니다. 22개월 된 아들이 있는데 재미있게 놀아주는 시간은 하루 20~30분에 불과해요. 1시간이 넘으면 슬슬 진땀이 나면서 아이를 엄마에게 떠넘기기 일쑤예요.


 


▲천준호= 대다수 아빠들이 육아에 대해 ‘도와준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아이 키우는 일은 부부가 함께 하는 것인데 말이죠. 같이 직장에서 돌아와도 아이를 씻기고, 책을 읽어주는 것은 엄마들의 몫인 경우가 많습니다. 아내가 도움을 요청하면 마지못해 잠깐 놀아주는 게 전부죠. 아빠들 반성해야 해요.


 


식당에서 뛰는 아이, 아빠들의 해법은?


 


▲윤강중(35ㆍ은평구 응암동)= 아이 키우기가 인내력 테스트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식당에 가면 뛰어다니는 아이들 있잖아요. 전 그런 것 눈뜨고 못 보는 성격이거든요. 도대체 가정교육이 잘 못 된 거죠. 제 아들은 25개월 됐는데 집에서도 밥 먹다 뛰어다니거나 투정을 부리면 밥을 치워버려요. 몇 번만 하면 식사습관 바로 교정됩니다. 식당에서도 마찬가지죠. “그러면 안 돼” 경고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체벌을 해요.


 


▲천준호= 그건 좀 심한데요. 저는 “너 뛰어 놀고 싶은 건 이해하는데 그러면 밥을 먹으러 온 아줌마 아저씨들이 얼마나 불편하겠니. 아빠도 어릴 적 뛰어다니다가 불에 데어서 많이 아팠어” 정도로 이해 시키려고 노력해요.


 


▲오형준(39, 성북구 돈암동)= 그 말씀도 맞지만 아이를 이해 시키는 것 보다 어른이 이해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요. 모처럼 부모와 외식하는데 양껏 먹고 기분도 좋은데 식탁에 얌전히 앉아있을 아이가 얼마나 되겠어요? 제 경우는 가능한 빨리 먹고 아이와 함께 밖으로 나가 놀아줘요. 아니면 놀이터가 있는 식당을 선택하지요.


 


▲류동기(35ㆍ서초구 방배동)= 듣고 보니 아빠들끼리는 술 마시고 놀면서 애들은 조용히 앉혀 놓으려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애한테 어른처럼 행동하기를 바라다니. 여자들이 가끔 남편하고 살기가 애 하나 더 키우는 기분이라는 소리 하던데 그래선가?


 


육아휴직, 하고는 싶지만…


 


▲변제욱(32, 용인시 포곡읍)= 둘째부터는 거저 키운다는 말 있잖아요. 그거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아이 키우는 법을 안다는 것과 경제적 부담 없이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잘 키운다는 말은 엄밀히 달라요.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데 육아휴직을 몇 달 씩 한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요. 아이를 워낙 좋아해서 셋째도 갖고 싶은데 경제력이 가장 큰 문제예요.


 


▲김 현= 아이를 키우는 부담이 오롯이 부모 몫으로 남겨지는 현실이 문제예요. 정부는 ‘낳아만 주십시오. 국가가 키우겠습니다’고 하지만 막상 아빠들은 회사 눈치 보느라 웬만한 강심장 아니고는 육아휴직 꿈도 못 꾸죠, 푼돈 지원 받은들 무슨 보탬이 되겠어요? ‘아이는 부부가 함께 키워야 한다’는 오늘 강의는 정치인들이 먼저 들었어야 해요.


 


그래도 아빠여서 행복하다


 


▲김동오(41ㆍ성동구 성수동)= 지난해 나이 40에 아이를 봤어요. 그것도 쌍둥이 공주들로요.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모르게 40년을 보냈는데 쌍둥이를 낳은 후 ‘내 존재의 이유’를 찾은 것 같아요. 두 딸이죠. 물론 남들보다 돈은 1.5배 들지만 행복은 수천 배나 된답니다.


 


덜 먹고 덜 입으면서도 자식 키우는 재미에 행복해 하는 아빠가 있는 한 우리 사회는 건강합니다. 자녀 교육비에 허리가 휘고 오십줄만 들어서면 퇴직 이후를 걱정해야 하는 고된 일상이지만 아빠의 자리를 소중히 지키려는 사람들이니까요. 오늘, 아이와 목욕한다며 욕실을 물바다를 만들었다 해도 야단치지 마세요. 아이와 함께 하는 아빠, 참 고맙고 멋지지 않나요.


 










▲ 좋은 아빠가 되려면 학교에 가세요

아이 키우는 아버지 학교는 비영리민간단체인 한국청년연합회가 ‘양육의 부부 공동책임’을 주창하며 올해 처음 시도한 강좌다. 제 1회 강좌는 지난 21, 22일 1박2일간 남산에 있는 서울유스호스텔에서 개최됐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강사로 나서 ▦산모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가 ▦아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아이 건강하게 키우기 ▦아빠와 함께하는 놀이 등을 주제로 열띤 강의를 펼쳤다. 천준호 대표는 “강의가 끝나도 질문을 하기 위해 자리를 뜨지 않을 정도로 육아에 대한 아빠들의 열의가 대단했다”면서 “7월부터는 전국 순회교육을 시작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다음 강의는 5월 26일 서울유스호스텔에서 숙박 없이 열리며, 참가비는 5만원이다. 기타 자세한 사항은 한국청년연합회 홈페이지(www.kyc.or.kr)를 참조하면 된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입력시간 : 2007/04/26 19:31:11




수정시간 : 2007/04/26 21:4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