쭈뼛거리던 아버지들 질문왕 된답니다
[아이랑 부모랑] ‘좋은 아버지 학교’ 가보세요
한겨레 유선희 기자


















































» 지난해 가을 열린 제4기 ‘아이 키우는 아버지 학교’에서 참가자들이 아이의 영양·육아태도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다. 한국청년연합회 제공
육아는 ‘아버지들의 행복추구권’
시간 부족? 성심껏 놀아주면 돼
수료뒤에도 모여 정보교환 ‘수다’


“아버지에게도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아이 키우는 아버지 학교’를 운영하는 한국청년연합회(KYC) 천준호 공동대표는 육아를 ‘의무가 아닌 권리’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 ‘좋은 아버지’가 되는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맞벌이가 늘어나고 육아와 가사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엄마, 아빠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한국청년연합회가 지난해 4월 아버지 학교를 시작한 이유다. 천 대표는 “육아를 의무로 바라보면 그 방법을 배우는 것도 스트레스가 될 수 있지만 아이와 함께 즐거운 삶을 누리는 ‘행복추구권’으로 생각하면 훨씬 쉬워진다”고 설명했다.

아버지 학교의 교육 대상은 출산을 앞둔 예비 아빠나 36개월 이하의 자녀를 둔 아빠들이다. 오는 24일부터 열리는 다섯번째 아버지 학교에서 아동발달 부분의 강의를 맡은 도미향 남서울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아이가 부모와 정서적인 교류를 가장 많이 하는 때가 36개월 이전이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도 교수는 “아이가 말을 못할 때부터 계속 대화를 시도하고 칭찬도 많이 해 주는 것이 좋다”며 “아버지가 수다쟁이가 될수록 아이의 정서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아버지들이 육아와 관련해 호소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시간 부족’이다. 돈 버느라 파김치가 되어 퇴근 뒤에도 주말에도 아이와 놀아 줄 시간과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천 대표는 “왜 꼭 오랫동안 아이와 놀아 줘야 한다고 여기는지 모르겠다”며 “양이 아니라 질로 해결하면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퇴근 뒤 단 10분을 놀아 주더라도, 딴짓 하지 않고 성심껏 아이와 놀아 주는 방법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버지들의 경우 몰라서 육아에 참여하지 못하는 측면이 더 크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미술학원의 차이도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천 대표는 “다들 강의를 들을수록 궁금증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며 “처음엔 쭈뼛쭈뼛하던 아버지들이 나중엔 강사를 화장실도 못 가게 붙들거나 엘리베이터까지 따라나와 질문을 퍼붓더라”며 웃었다. 아버지 학교 프로그램 가운데는 ‘생생토크’라는 대화시간이 있다. 육아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는 자리다. “아버지들 수다가 얼마나 대단한 줄 아세요? 직장에 선 애 키우는 이야기가 폼이 안 나는 이야기라 안 하는 것일 뿐, 멍석을 깔아 주면 1~2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죠.” 아버지들은 이 시간을 통해 여러 가지 의견을 내놓는다. “남자들이 육아휴직을 안 쓰는 이유는 다른 팀원들에게 미안해서야. 남성 육아휴직자가 있는 팀에 인센티브를 주면 어떨까?”, “밤에 아이가 아프면 몸 둘 바를 모르잖아? 24시간 전화 상담·정보센터를 만들면 좋지 않을까?”…. 이런 토론을 통해 가까워진 아버지들은 학교가 끝난 뒤에도 수시로 모여 정보를 교환하는 커뮤니티도 만든다.

이번 5기 학교에서는 기존의 육아·영양·안전·양육태도·발달이해에 대한 교육 이외에 ‘아빠와 함께 보는 책’ 프로그램이 추가됐다. 아버지가 책을 매개로 아이와 상호작용하는 방법이 소개된다. 강의를 맡은 박소희 푸른 어린이도서관장은 “게임을 하듯 즐겁게 책을 읽어 주며 아이와 대화하면 된다”며 “이런 활동은 아이와 아버지가 공동의 관심사를 갖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버지의 몫과 자리를 찾기 위한 배움, 아버지 자신을 위한 배움을 지금부터 시작하세요.” 천 대표가 아버지 학교 참여를 권하며 한 말이다.

5기 아버지 학교는 토요일인 24일(오후 6~8시30분)·31일(오후 2~7시) 이틀 동안 열리며, 참가비는 8만원이다. 부부 동반 수강도 할 수 있다. 프로그램에 대한 문의와 참가 신청은 23일까지 홈페이지(www. kyc.or.kr)나 전화(02-2273-2205)로 하면 된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 왼쪽부터 추봉훈(35·서울 중랑구), 김현(38·경기 김포).


‘아버지학교’ 갔다 오니…“제가 행복해졌어요”

4기 ‘아버지 학교’를 수강했던 추봉훈(35·서울 중랑구)씨는 요즘 39개월짜리 딸 희원이와 ‘아빠 놀이터’ 놀이를 하는 데 푹 빠졌다. 아빠 놀이터는 아이와 스킨십을 늘리라는 아버지 학교 강사의 조언에 따라 추씨가 고안해 낸 놀이로, 목말·무릎시소·팔그네 등 자신의 몸을 놀이기구 삼아 아이를 태우고 놀아 주는 것이다.

“새벽에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니 아이 얼굴 볼 틈도 없고, 그러다 보니 희원이가 아빠 얼굴을 자꾸 잊더라고요.” 위기의식을 느낀 추씨는 ‘아버지 학교’ 문을 두드렸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아빠의 부름에 잘 대꾸도 않던 희원이는 요즘 서툰 발음으로 “아빠가 책 읽어 줘”라며 추씨에게 안긴다. 아이를 위한 이벤트를 마련하라는 조언도 큰 도움이 됐다. 주말엔 꼭 근처 어린이대공원이나 수족관에 희원이와 함께 나들이를 간다. 이제 희원이는 주말은 으레 ‘아빠와 노는 날, 그래서 즐거운 날’로 여기고 기대에 부푼다. “아이가 ‘아빠,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던 날 느꼈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네요.” 추씨는 “아이를 위해 수강했는데, 결국 내가 더 행복해졌다”고 말했다.

‘1기 아버지 학교’에 참여한 김현(38·경기 김포)씨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수강을 한 경우다. “아이가 해달라는 대로 해 주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책을 읽어 줄 때도 방법은 따로 있었다. 대화를 많이 하고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할 것! “책을 읽어 주면서 제가 연극을 해요. 돼지·호랑이 등 각각 목소리에 맞게요. 그럼 아이가 계속 그림책에 흥미를 갖더라고요.” 예전엔 10분만 놀면 엄마에게 가겠다고 떼를 쓰던 아이가 요즘엔 아빠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김씨는 프로그램 수강 뒤 아내와의 사이에 더 큰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쉬는 날엔 컴퓨터를 하거나 신문만 읽어서 아내가 화를 내곤 했어요. 제 딴에는 ‘이 정도면 됐지 더 어쩌란 말이야?’ 이런 식이었고요.” 교육을 받으며 육아는 아이나 아내를 돕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김씨는 적극적으로 변했다. “둘째가 태어난 뒤 큰 아이 돌보기는 제 몫이 됐어요. 아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니 가정 안에서의 제 자리와 제 몫이 보이더군요.”

유선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