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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곧 올리겠습니다.

특별법안・사진전…한국피폭자에게 확대되는 지원 2005년 8월 4일

동대구역 내에서 개최된 원폭사진전. 원폭의 참상을 전달할 판넬사진을 젊은이들이 걸음을 멈춘채 들여다 보고있다. = 7월 21일, 한국 대구시에서

한국에서 피폭자를 지원하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국회에는 4일에도 지원헌법이 제출된되었다. 원폭사진전 개최의 움직임도 확대되고 있다. 일본의 식민지지배로부터 해방된지 60년. [민족해방으로 이어졌다]라는 원폭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무관심속에 방치되었던 피폭자에게 드디어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되었다. 피폭자 또한 자신들의 체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국 국회에서 4일, [원폭피해자 진상규명과 지원을 위한 특별법안]이 제출되었다. 의안을 만든 것은 야당인 민주노동당의 조승수 의원으로, 여야당 약 20명이 찬성했다. 한국에서 살고있는 피폭자와 2세를 대상으로, 간의 무료검진과 생활수당 지급등을 한국정부가 실시하자는 내용이다.

[과거사] 검증

 

올초, 의원회관의 조의원의 방에 피폭2세의 남성이 방문해 왔다. 선천성 난병을 가지고 있고, 병과 빈곤에 괴로워하는 한국의 피폭자와 2세의 고통을 호소했다. 남성은 5월말, 36살로

급서(갑자기 세상을 떠나감). 남성을 위해서 6월, 여야당 의원에게 호소 [한국인 원폭피해자를 지원하는 의원회]를 결성했다.

 

조의원은 학생시절, 히로시마를 방문했다. [민간인을 무차별하게 죽인 원폭투하는 실수였다]라고 생각했다. 작년 첫당선.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세대가 많이 당선한 신국회에서는 [과거사]의 검증작업이 활기를 띄였다. 피폭자도 [일제식민지 지배의 피해자]로써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한국정부는 피폭자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지금껏 왔다. 인권문제로써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남부에 위치한 대구, 한국 고속철도 동대구역내에서 7월, [원폭 60년. 고동의 기억과 연대, 그리고 평화]라는 주제로 사진전이 열렸다. 등뒤에 화상이 굳어 괴로워하는 한국인 피폭자의 사진, 일본의 피폭자가 그린 판넬그림등 약 80점. 고교 1학년 남학생(16)은 [이런 무기가 정말로 사용되었다니, 비참하기 그지없다]라고 얘기했다. 지금까지 희생자의 수도 몰랐었다.

 

사진전은 각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 9월까지 서울등 8개시 이상에서 열렸다. 피폭자를 테마로 한 순회전시는 한국에서 처음이라고 한다.

 

대구에서의 사진전을 기획한 대구KYC (한국청년연합회) 사무처장인 김동렬(37)씨는 [6.25사건(한국전쟁)에서 핵사용이 검토되었다는 등 한국에서도 핵의 위험이 있었지만, 아직 피폭자들이 입은 고통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라고 얘기했다.

 

학교에서는 [원폭투하로 인본은 항복. 우리나라는 광복을 맞이했다]라고 배웠다. 군사정권하,원폭비판은 동맹관계의 미국비판으로 연결되었던 것도, 피폭자의 사정을 몰랐던 배경이 되었다.

한국 원폭피해자 협회장인 곽기훈씨는 금년, 시민단체의 집회에서 두 번, 피폭체험에 대해 연설했다. 한국에서 많은 젊은이들 앞에 이야기할 기회는 지금까지 없었다. 곽씨는 [피폭60주년이 되어 드디어 관심이 모아졌다]라고 생각.

 

경상남도 합천에 위치한 합천 원폭피해자 복지회관에서 살고있는 송임복(72) 7월, 대학생 약 20명에게 히로시마의 참상을 연설했다. 아버지와 사촌 3명이 피폭으로 사망. 귀국후, [피폭자에게는 균이 있다]라고하는 주위의 소문을 귀에 달고 살았고, 악 20주년까지는 피폭의 사실을 감춘채 살아 왔다.

 

폐암을 걱정, 의사에게 남은생이 얼마남지 않았다란 얘기를 들었다. [참사가 두 번다시 되풀이 되지 않을 것을 기원하며, 죽는 날까지 내가 겪은 참상에 대해 얘기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