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까뮈와 ‘작업 중인 과거사’

알베르 까뮈의 소설 중에 ‘작업 중인 예술가’라는 부제가 붙은 ‘요나’라는 단편작품이 있다.

‘이방인’, ‘시지프스의 신화’를 대표작으로 하는 ‘부조리 문학’의 까뮈가 실존하는 인간의 내면을 그린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그 주인공은 화가인데, 소설의 마지막에 “그 화가가 그림을 그린다고 천장의 다락방에 올라가서는 내려오지 않아, 가족과 친구, 화가의 팬들이 올라가 봤더니 화가는 쓰러져 있고, 죽어가면서 캔버스에 희미하게 써놓은 글씨가 ‘solidaire’ 인지, ‘solitaire’ 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라고 끝이 맺어져 있다.

프랑스어로 솔리떼르(solitaire)는 ‘고독’이라는 뜻이고 솔리데르(solidaire)는 ‘연대’라는 말

인데 낱말속의 한 글자가 ‘d’인지 ‘t’인지를 부각시킴으로써 인간의 존재의식이 과연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를 표현하려 한 까뮈의 문학관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프랑스에는 유명한 소설가 ‘앙드레 말로’가 있다. 말로는 프랑코 독재에 맞서 스페인내전에 참전한 헤밍웨이와 더불어 ‘르뽀르따주(reportage)문학’을 개척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인간의 조건’을 1933년에 발표하여, 그 해 ‘공쿠르상(賞)’을 받았다. 이 소설은 장개석이 공산주의자와 연합해 북방군벌을 몰아냈다가 다시 총뿌리를 돌려 공산주의자를 탄압한 저 1927년의 상해쿠데타를 배경으로 삼아 쓰여 졌다.

바로 이 작품에서 말로는 주인공 첸(陳)을 ‘연대적인 행동’의 중심 속에서도 ‘고독감’에서 헤어날 수 없는 행동가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이처럼 두 소설가는 인간의 실존적인 의식을 작품 속에서 다뤘지만 역사적, 현실적 측면에서는 파시즘과 나찌에 맞서 레지스탕스 운동을 한 행동가들이었다.

나찌가 프랑스를 점령하자 굴종과 부역의 길을 선택한 비시정권 시절, 까뮈는 지하 저항조직인 ‘꽁바'(Combat-전투)에 참여해 목숨을 걸고 레지스탕스운동을 하였다.

우리나라에도 이육사, 윤동주 같은 시인이 있다. ‘청포도’, ‘광야’ 등으로 유명한 이육사는 항일 테러리스트 조직인 조선의열단의 단원으로서 문학을 통해 일제에 저항하였고, 그래서 사격술도 뛰어났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일제로부터 우리민족을 독립시키기 위해 가족들의 안위를 버리고 자신의 목숨을 건 사연과 역사가 얼마나 숱했던가?

과거는 언젠가는 밝혀지고 역사는 바르게 쓰여 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경제가 어려운데 또 무슨 과거사 타령인가’ 라는 말은 진정으로 이웃의 어려움을 걱정하는 이들만이 말할 자격이 있을 것이다. 특히 왜곡된 역사에 한쪽 발을 숨겨둔 정치인들은 전혀 자격이 없다.

중국이 고구려사와 발해사를 제 역사라고 강변하고, 일본이 독도를 자신의 땅이라고 우기는 것은 우리들이 과거사에 대한 평가와 반성 없이 부(富)만 축적 하면 된다는 논리 속에 8.15 해방 이후 반세기를 살아왔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일인 것이다.

죽음을 무릅쓰는 위험을 안고 인생의 고독을 달래며 대의(大義)를 위해 연대한 사람들, 알베르 까뮈, 앙드레 말로 그리고 우리의 그 숱한 항일독립운동가들, 적들의 땅 후쿠오카와 죄 지은 적 없는 중국의 감옥에서 조국의 광복을 위해 외로이 죽음을 맞은 윤동주, 이육사 시인을 생각해보자!

유성찬(자치분권전국연대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