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하루의 일정을 체크했다.

일을 좀 하고 오후 3시 올림픽공원에서 있는 아내 친구 결혼식에 가고 공원에서 좀 놀다가 광화문 촛불집회에 가면 된다. 특히 오늘 내가 평화단식 날이므로 저녁을 굶어야 한다. 잊지 말자!

드문 경우인데 오늘 일이 빨리 끝났다. 오! 출발이 좋은데…

즐거운 마음으로 아내와 4살된 딸, 이제 백일 넘은 아들과 함께 결혼식으로 출발했다.

아! 나의 오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내가 첫 테이프를 끊었다.

올림픽 공원에는 예식장이 두 곳이 있는데 아내가 잘못 찾아간 것이다. 꽤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차를 타고 공원을 나와서 한바퀴 도는데 무슨 행사때문인지 차가 무척 막혔다. 결국 1시간 정도 늦게 식장에 도착했다. 등이 땀으로 후줄근해졌다.

하지만 이 정도야…

텁텁한 날씨 덕인지 딸은 머리의 부스럼에 연신 손이 가고, 아토피가 있는 아들도 울음이 잦았다. 이것도 거의 매일 있는 일 아닌가! 걱정 없다. 아직 오늘은 좋은 토요일이었다.

아내 친구의 결혼식. 아내 친구는 멋지게 차려 입었다.

이제 8년차에 접어든 아내는 아이 둘이 딸린 아줌마였다.

“그러고 보니 많이 늙었구나!”

마음이 조금 쓰렸다.

아이 둘을 키우는 일은 거의 초인적인 힘과 인내력을 요구한다. 단언하지만 군대생활보다 더 고되다. 휴직하고 육아에만 전념하는 아내를 옆에서 조금 도와주는 나도 요즘 거의 녹초가 되었다.

특히 이번 6월은 나의 잦은 지방출장과 술자리로 아내가 더 힘들었으리라!

원래 계획은 5시30분이 넘으면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으로 가는 것이었지만 나의 출발은 점점 늦어졌다. 아내는 공원에서 좀 더 산책하자고 했고, 공원을 나와서는 오래간만에 백화점에 구경을 가자고 했고, 팥빙수를 먹자고 했고, 냉면도 하나 먹고 싶다고 했다. 거기에 더해서 딸은 오늘은 꼭 물총을 사야한다고 아빠의 다짐을 몇차례나 받아놓은 상황이다.

다음주는 월요일, 목요일, 금요일에 술 약속이 있고 토요일은 중앙운영위가 있어서 아예 외박을 해야 한다!

생각이 여기에 닿자 나는 광화문행을 포기했다.

공원을 걸었고, 백화점에 갔고, 팥빙수를 먹었고, 아내는 냉면도 먹었다. 다행히 딸은 아이스크림에 빠져서 물총을 잊고 있었다.

에이씨! 짜식들 탄핵때문에 촛불집회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또 무슨 파병을 한다고 난리야! 파병하면 나한테 죽는다!

그렇게 나는 오늘 오후 조국 대신에 집안에 충성을 하였다.

만약 파병이 된다면 그건 다 내 책임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하나 책임질 일이 있다.

만약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지 않는다면 그것도 내 책임이다.

결혼식장에 도착하자마자 내 기억에서 “오늘이 내 평화기금 단식날”은 사라졌다.

나는 갈비탕을 먹었고, 떡을 먹었고, 팥빙수를 2개 먹었고, 떡볶이를 먹었고, 집에 들어와서는 북어를 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그리고 바로 조금전 아침에 펼쳐봤던 일정표를 보았다.

그렇게 나는 아내와 갈비탕을 먹으면서 조국의 평화를 잊었고, 딸의 목마를 태우고 찾아간 눈부신 백화점의 전등빛 속에 광화문의 촛불을 져버렸다.

어찌하란 말이냐?

나는 35살이고, 두 아이의 아빠이고, 8년차 결혼생활을 더 재미있게 가꾸고 싶어하는 아내의 남편인 것을…

나에게 토요일은 조국보다는 가정에 바치고 싶은 날인 것을…

오늘도 광화문에 나가서 사무처장을 찾았을 우미정!

나를 욕하지 마라.

나도 한때는 사회변혁의 뜨거운 피를 가진 싸나이였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