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30분만 놀아줘도 ‘아빠는 멋쟁이’
[아이랑 부모랑] ‘불량 아빠’에서 ‘좋은 아빠’ 되기
한겨레 이종규 기자

» 윤강중(35)씨와 아내 허순회(33)씨가 집 거실에서 아들 석훈(3)이와 함께 퍼즐 맞추기 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3살짜리 아들을 둔 회사원 윤강중(35)씨. 여느 아빠와 다름 없이 바쁜 업무 때문에 ‘불량 아빠’로 살아 온 윤씨는 요즘 ‘좋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 중이다. 영업부서에서 일하고 있어 저녁 약속이 많지만, 가급적 일찍 집에 와 아들 석훈이에게 책도 읽어주고 함께 퍼즐 맞추기를 하는 등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애쓴다. 윤씨가 이처럼 ‘불량 아빠’ 탈출에 나선 것은 지난 5월 아내가 ‘덜컥’ 신청해버린 한국청년연합회의 ‘아이 키우는 아버지 학교’에 다녀온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아버지 학교’에서 윤씨가 스스로에게 붙인 별명도 ‘불량 아빠’였다. 윤씨는 “그동안 아이에게 좋은 아빠가 되어 주지 못한 것을 반성하는 의미로 그렇게 정했다”며 “아빠의 역할을 그저 막연하게 생각해 왔는데 강의를 들으면서 아이에게 왜 아빠가 소중한지를 절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요즘 육아와 교육에서 아빠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윤씨처럼 아빠 노릇을 제대로 해보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아빠들이 자신의 육아·교육 체험을 바탕으로 직접 쓴 지침서들도 속속 출간되고 있다. 이제 육아·교육 문제는 아내 몫으로 돌린 채, 남자는 열심히 돈만 벌어오면 된다고 여기는 ‘구닥다리 아빠’들이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는 게 사회 분위기다. 한국청년연합회 천준호 공동대표는 “주변을 둘러보면 아이 키우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긴 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아빠들이 의외로 많다”며 “아버지 학교의 사회적 확산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놀이는 ‘길고 대충’ 보단 ‘짧고 굵게’

성 정체성·사회성 발달에 큰 영향

대화·칭찬하기도 인색하지 말아야

왜 아빠인가?=아빠가 육아의 한 축을 맡아야 하는 이유는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남자와 여자 절반씩으로 구성돼 있다는 기초적인 사실에서 비롯된다. 물론 가정도 ‘작은 사회’다. 이런 점에서 그동안 뒷짐만 지고 있던 아빠가 아이 키우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정상화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민식 마음사랑심리상담센터 대표는 “아이들의 눈에도 세상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구분된다”며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정서적 교류를 하며 성별에 따른 차이와 특징을 이해하고 자기 정체성과 역할을 배워간다”고 설명했다. ‘이보연 아동가족상담센터’의 이보연 소장은 “일반적으로 엄마들은 사건이나 사물을 감성적으로 받아들이고, 아이를 돌보고 감싸는 것에 좀더 능숙한 반면, 아빠들은 사실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방식을 지향하기 때문에 아이를 다룰 때도 객관성과 단호함이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다”며 “아이가 엄마와 아빠의 이런 특성을 모두 경험해야 균형 있게 자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아이의 발달 과정에서 몇몇 영역은 아빠의 영향을 더 많이 받기도 한다. 사회성이 대표적이다. 이 소장은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아이의 사회성 부족은 아빠의 책임이라고 할 만큼 아빠가 큰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아빠들은 아이들과 놀이할 때 적극적으로 몸을 움직이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데, 이런 놀이를 통해 아이의 적극성과 탐구정신, 사회성이 촉진된다”는 설명이다.

위니캇정신분석연구소 김형근 소장은 “아이가 태어난 뒤 한동안 젖을 빨며 한몸처럼 지내는 엄마와는 달리, 아빠는 아이가 처음으로 엄마가 아닌 외부세계에 대한 탐구여행을 감행하는 시기에 의식되는 최초의 새로운 대상이라는 점에서 아이의 자기 발달에 중요한 구실을 한다”고 말했다. 아이를 좀더 넓은 세계로 이끄는 존재라는 것이다.

아이와 어떻게 만날까=가장 중요한 것은 잘 놀아주는 것이다. 그러나 일에 지친 아빠가 퇴근해서 아이와 놀아주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이보영 소장은 “길게 건성으로 노는 것보다 시간을 정해 두고 ‘짧고 굵게’ 놀아주라”고 권한다. 놀이시간은 아빠가 견딜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정하는 것이 좋다. 30분 이내로 화끈하게 놀아주는 것이 얼굴 붉히지 않고 즐겁게 놀이를 마무리할 수 있는 적정 시간이다. 이 소장은 △미리 놀이가 가능한 날짜와 시간을 정한 뒤 이를 달력에 표시해 놓고 그 시간만큼은 꼭 지키고 △놀이가 끝나기 5분, 1분 전에 아이에게 남은 시간을 알려주고 △놀이가 끝나면 아이와 함께 논 시간이 즐거웠다고 말해주고 아이의 아쉬운 감정도 헤아려주라고 조언한다. 놀 때는 아이가 놀이에서 주도권을 잡도록 해주고 아이가 놀이에서 성공하는 경험을 제공해주는 것이 좋다.

아이들과의 대화도 중요하다. 이민식 대표는 “아이들과 소통을 잘 하려면 아이의 잘잘못을 평가하거나 판단하는 말, 가르치려 드는 말을 줄이는 대신 충분히 들어주고 함께 생각해보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아빠들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기술이 부족하다. 당연히 칭찬에도 인색하다. 이보영 소장은 “아이들은 아빠의 작은 칭찬에도 감동한다”며 △눈을 마주치며 살짝 웃어주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기 △어깨를 두드리거나 살짝 안아주기 △“멋진데”, “역시, 내 아들” 하고 아이에게 들리도록 감탄해주기 등도 훌륭한 칭찬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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