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땅 찾기, 중국 예민하게 만들어”

코리아 청년, 차이나 중심을 가다 2편

<임호정(lilydew) 기자>



▲ 베이징 텐안먼

중문과를 시작으로 맺게 된 길고 긴 중국과의 인연은 잠시 캐나다에 다녀오고 난 후에도 우연찮게 이어지게 되었다. 8월 말 캐나다 밴쿠버에서 귀국할 무렵 오마이뉴스 이메일을 통해 알게 된 청년글로벌리더십 양성 목적의 중국연수 프로그램 ’21세기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한 일주일간의 중국 여행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중국 가기 전 이남주 교수의 ‘중국 정치경제 현황’ 특강과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의 저자 배기찬 선생의 통찰력 있는 강의를 들으면서 중국연수에 대한 기대감과 주제의식을 환기시킬 수 있었다.

건국기념일 준비로 바쁜 베이징 거리

2004년 여름 캐나다 출국 전 마지막으로 중-북 접경 지역을 다녀온 이후 베이징은 2002년 이후 3년 만에 밟는다. 맑고 청명할 줄 알았던 9월 말의 베이징 가을 하늘은 생각보다 흐리고 뿌옇다.

베이징 시내 여기저기 걸려 있는 ‘문명시민(文明市民)’, ‘현대화도시건설(現代化都市建設)’, ‘중화민족대단결(中華民族大團結)’, ‘사회주의화해사회건설(社會主義和諧社會建設)’, ‘과학발전(科學發展)’ 등 큼지막한 구호간판들과 인민영웅기념탑 주변의 ‘경축중화인민공화국56주년(慶祝中華人民共和國56週年)’ 간판, ‘동일세계, 동일몽상(同一世界,同一夢想)’ 문구로 장식한 화려한 화단, 각종 모형장식물들로 단장한 천안문 광장을 보면서 중국 최대의 국경절 10월 1일 56회 건국기념일을 맞이하는 중국의 자부심과 정책의 방향과 분위기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 텐안먼 광장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상징하는 모형에 ‘동일세계, 동일몽상(同一世界,同一夢想)’이란 구호가 붙어있다.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은 베이징현대자동차 ‘엘란트라[伊兰特]’ 택시들이 꽤 많이 보이는 것이다. 베이징현대자동차가 베이징올림픽 택시로 채택되어 전 택시를 교체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었는데 과연 예전의 노란 ‘미엔띠(빵차)’는 하나도 안보이고 구형 빨간 택시들도 간간이 보일 뿐이었다.

“중국 부상 관련 너무 부풀려진 보도 많았다”

베이징에 도착한 첫날인 9월 25일 저녁 <중앙일보> 유광종 특파원과 만찬 겸 기자간담회가 있었는데, 개인적으론 평소에 즐겨 읽던 기사를 쓰신 분을 직접 베이징에서 뵙게 되어 더욱 반가웠다.

▲ 유광종 <중앙일보> 베이징 특파원

중국 현황에 대한 간단한 강의에 이어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기면서 계속된 열띤 질의응답,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 돌아가며 자기소개하며 이름 외우기 등을 통해 아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중국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배우는 알찬 시간이었다.

유광종 기자는 2001년부터 국내언론에서 중국의 부상에 대해 너무 부풀려진 보도들이 많았다면서 이제는 중국을 냉정하고도 면밀하게, 객관적으로 장단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단일민족인 우리와 일 대 일로 비교가 불가능한 이질성이 많은 다민족 국가로서 불안정한 사회구조, 정치시스템에서 중화주의를 통합기제로 사용하려는 맥락에서 동북공정 및 주변 변경사를 재정리하고 있으며, 작년에 불거진 ‘고구려사’ 문제는 일단 수습이 되었지만 아직 미봉되었기에 개인적인 우려가 큰 부분이라고 밝혔다.

또한 ’21세기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서울에서 산오징어회를 먹을 수 있는 것은 동해안에서 오징어와 함께 천적을 담아 오기 때문에 생존하려고 몸부림치기 때문인 것처럼 한국도 경제적으로 무섭게 따라오고 있는 중국과 같이 살려면 계속적으로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고 개발해야 한다고 한 비유가 참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감수성과 정교한 손재주는 경쟁력이 있으며, 한류 현상에서 보듯이 문화적 우위가 있는 만큼, 긍정적이고 강점이 될 부분들은 지속적으로 개발시켜야 하며, 창의적이고 집중적인 방식으로 중국에서 성공하고 있는 대기업들을 지원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식 건배의 의미를 가르쳐주며 이어진 만찬이 더욱 맛있는 베이징의 첫날 저녁이었다.

간담회를 마치고 나오니 식당 앞 공원에서 남녀노소 다같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이 광경을 처음 보는 우리 연수단원들은 모두들 신기해하며 중국인들의 여유로움과 건전한 춤 문화를 관찰할 수 있었다.

“중국 개혁, 이제 어려운 부분만 남았다”

이튿날 오후엔 중국공산당중앙당학교 조호길 교수의 특강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당교 교수의 강의라 해서 그렇게 기대는 안 했었는데, 내 편견이 깨지는 시간이었다. ‘개혁개방 후 중국 국가 발전전략의 변화 및 전망-정치학적 시각’이라는 주제였는데, 조호길 교수의 그 진지하고 열정적인 강의에 적잖이 놀라며 완전히 강의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조선족으로 비교정치학을 공부한 조 교수는 중국의 제반 문제점들에 대해 솔직하고 기탄없이 조목조목 이야기해 주고 또 진지하게 대안을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히 묻어나는 태도를 보였다. 어쩌면 중국 공산당 간부들이 저렇게 국가제반 문제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진지한 토론과 학습을 통해 연구하고 모색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이제까지 발전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조호길 교수의 강연을 듣고 있는 연수단원들

조호길 교수는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정치가치 지향의 차이와 중국개혁, 성장제일주의에서 균형발전 전략으로의 변화, 시장제도 도입과 정치개혁에 대해 말하면서, “중국의 개혁은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으로 점진적으로 추진되어왔는데 이제 쉬운 부분의 개혁은 거의 끝나가고 어려운 부분들, 예를 들어 금융체제개혁, 정치체제개혁 등이 남았다”고 밝혔다.

근 25년에 걸쳐 추진되어 온 개혁 개방이 성장제일주의 원칙으로 일관하는 바람에 도농간, 지역간, 경제와 사회, 인간과 자연, 국내발전과 대외개방 사이에 불균형을 가져왔는데, 그 중에서도 도농간, 지역간 격차가 가장 심각하여 정치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중국은 지금 개혁개방으로 인한 기대와 만족의 불균형에서 오는 심한 좌절감, 불균형적인 발전으로 인한 지역, 계층간의 갈등, 신구 교체에서 오는 심한 갈등으로 진통을 겪고 있으며, 이에 대해 정부는 경제적으로는 서부개발, 동북지역 개발, 삼농문제에 관한 정책으로, 정치적으로는 당내 민주화와 정치과정의 절차화 조치들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후진타오, 성장주의에서 균형발전으로 선회

후진타오는 성장주의 국가 발전전략을 펼친 장쩌민 정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민’을 중시하는 민본주의 정책으로 성장과 분배의 균형발전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몇 년 전 베이징의 택시기사들과 이야기할 때에는 장쩌민에 관해 욕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후진타오를 욕하는 택시 운전기사들이 없었다.

이는 지금 베이징에서 8일부터 11일까지 진행 중인 제16기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5중전회)에서 수립할 향후 5년 동안의 중국의 발전전략'(2006-2010) 즉 ‘제11차 5개년 계획(11.5계획)’의 핵심이 ‘균형과 발전’이 될 것이라는 전망과 맥락을 같이 하는 부분이다.

조 교수는 “자유시장경제는 계획경제 바탕 위에 세워진 기존의 정치체제에 심각한 도전을 하고 있는데, 중국의 정치민주화를 국가통일→중앙정부 권위확립→정치조직 및 정치과정의 제도화와 절차화→보편적 참여의 4단계로 상정하여 볼 때, 중국은 지금 제2단계에서 제3단계로 이전 중이라고 볼 수 있다”며 “후진타오 정권은 정치체제개혁을 점진적으로 추진하되 집권당내 민주화와 정치조직과 정치과정의 제도화, 절차화를 중심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 조호길 중국공산당중앙당학교 교수

조호길 교수는 89년 톈안먼 사건 전까지 북경대 정치개혁연구소에서 일했는데, 89년까지는 정치개혁, 경제개혁을 동시에 추진하다가 톈안먼 사건 이후로 정치개혁연구소도 폐쇄되는 등 정치개혁은 중단되고 경제개혁만 추진되었다고 한다.

톈안먼 사건 이후로 정치에 냉랭해진 지식인들이기에 격렬한 민주화 운동의 가능성은 거의 없으나 오히려 농민들, 퇴역군인들 사이에 더 폭발적인 불만이 잠재하고 있다고 했다. 일례로 2002년 50명 이상 군집한 농민들의 집단 소요사건이 6만6천 건 이상이었다고 한다.

2020년까지는 공산당 주도하에 지방자치 정도까지는 추구하겠지만 진정한 정치개혁은 불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중국은 지금 정치민주화 모델을 모색하고 있는데 중국에 맞는 모델을 찾기가 쉽지 않다며 인도네시아의 간접선거 모델을 관찰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대외정책에서는 현재로서는 반테러, 북핵문제 등으로 중미간 협력적 관계에 있으나 이 문제들이 해결되면 다양한 사안이 갈등을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만주땅 찾기 운동, 중국 예민하게 만들어”

예정된 시간보다 훨씬 넘어서 끝난 열정적 강의와 토론으로 미처 다 끝나지 못한 질의응답은 저녁식사 하러 가는 차 안과 식당에서까지 계속 되었다. 특히 차 안에서 중국-북한 관계, 중화민족주의, 동북아공정 등 많은 중요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중국과 북한이 생각했던 것처럼 긴밀한 관계가 아니라 정책기조와 사상이 너무 달라서 당교차원에서 서로 만나도 할 이야기가 거의 없다며, 2003년 9월 26일 중국 대외연락부장의 성명으로 중북관계가 개혁개방 이후 새로운 당 대 당의 관계로 들어섰다고 공표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조호길 교수는 특히 일전에 한국의 국회의원들이 만주땅찾기 운동을 벌였던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는데, 5개 소수민족의 모국이 중국 접경에 위치하고 있어 이들의 동향에 특히 예민해진 중국을 더 예민하게 만든 잘못된 케이스라고 밝혔다.

특별한 문제는 특별한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며 그런 문제는 전임대통령이나 중국과 친분이 있는 무게있는 정치인들간의 민간교류 차원에서 토론해야 할 문제이지 정치적 차원에서 국회의원들이 직접 거론하게 되면 일을 더 그르치게 된다며 강한 우려를 표했다.



▲ 국경일을 앞두고 텐안먼 광장을 점검하고 있다. 뒤로 인민대회당이 보인다.

2020년 이후 중국의 모습은?

오리엔테이션에서부터 기자간담회, 특강을 들으면서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의문은 2020년 이후의 중국의 모습이다. 2020년까지 중국은 전면적인 소강사회를 이루기 위해 경제발전에 총력을 쏟을 것이고, 그 때까지는 중국정치개혁은 점진적으로 실행될 것이다. 또한 대외적으로도 중국경제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 미국과의 관계를 갈등보다는 상호협력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 이후는? 2020년 중국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2020년 경제발전이 상당히 이루어진 시점에서 ‘자유화 없는 민주화’에 기초한 정치적 리더십이 효율적으로 작동할 것인가? 미국과 한반도와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중국은 산적한 난제들을 순조롭게 극복하면서 21세기 중국식 사회주의 실험에 성공할 것인가?

예측하기 힘들지만, 중국이 이제까지 신중하게 보폭을 조정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개혁을 이루어왔듯이 앞으로도 점진적으로 개혁을 성공적으로 진행시켜 동아시아 민주주의 평화 공동체에 동참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