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시대 원조 ‘한류 스타’를 만나다

항저우 영은사 지장보살 김교각 스님

권숙도(episteme1) 기자



▲ 김교각 스님을 비롯한 504명의 보살들을 모신 오백나한전

ⓒ2005 오마이뉴스 김시연

중국연수 일주일째인 10월 1일 오전 청년글로벌리더십 중국연수단은 상하이를 떠나 마지막 방문지인 항저우로 향했다. 평소 상하이에서 항저우는 3시간 거리였지만 이날은 거의 두 배나 걸렸다. 바로 이날이 중국의 대표적 명절인 건국기념일 연휴의 첫날이기 때문이다.

항저우는 중국의 대표적인 관광도시로 불교신자가 많기로 유명하다. 한국의 여름을 떠올릴 만큼 끈적거리는 날씨였지만 항저우 서북쪽에 위치한 영은사(靈隱寺)는 연휴를 맞아 절을 찾은 신자들과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 연휴를 맞아 영은사를 찾아 향을 태우며 소원을 빌고 있는 불자들.

ⓒ2005 오마이뉴스 김시연

한국의 아기자기한 절에 익숙한 탓인지, 보는 이를 압도하는 웅장한 건축물과 석굴, 거대한 불상과 수많은 보살들을 보며 조금은 마음이 위축되기도 했다. 1600년 전에 만들었다는 영은사는 규모면에서 중국 선종 10대 사찰 중 하나로 꼽히는 큰 절이라고 한다.

특히 연수단의 눈길을 끈 것은 동으로 만든 504명의 보살들을 모신 오백나한전이었다. 이곳은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위대한 보살들을 모신 곳인데 그 숫자가 무려 504명이나 된다고 한다.

오백나한 가운데서도 중국인에게 가장 추앙받는 인물이 바로 신라인 지장보살 김교각 스님이다. 지장보살을 포함한 네 보살은 별도 공간을 만들어 다른 보살들과 달리 특별히 모시고 있었다.

김교각 스님의 법명인 ‘지장(地藏)’은 “육도중생을 다 반드시 제도하겠다. 지옥이 다 빌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라고 한 그의 대비원 때문에 붙여진 이름. 그는 본래 1300년 전인 696년에 신라에서 왕족으로 태어났다. 그가 바로 신라 33대 성덕왕의 맏아들로 왕세자로 책봉되기도 했던 김중경(金重輕)이며 출가한 뒤 계명(戒名)해 김교각(金僑覺)이라 불리고 있다.



▲ 중국인에게 지장보살로 추앙받고 있는 김교각 스님

ⓒ2005 고상연

김교각 스님은 24살 때 719년 당나라로 건너와 75년 동안 수도교화하다가 99세(794년) 때 입적했는데, 중국에서는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추앙받으며 ‘김지장’으로 불리고 있다. 중국인들 사이에선 김지장 보살에게 와서 기도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영은사를 찾는 불자들이 빠뜨리지 않고 찾는다고 한다. 지금도 안휘성 구화산 화성사 육신보전의 등신불로 남아 추앙받고 있다.

한국인이 먼 이국인 중국에서 세계의 모든 불자들에게 추앙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갖게 해 주었다. 이렇게 기쁜 마음을 안고 중국에서 마지막 날을 보냈다.

지난 1주일 동안 중국의 현재와 과거의 모습을 둘러보며, 많은 자극을 받고 한국의 미래를 생각했다. 작게는 나의 미래를 생각했다. ‘역사는 우리에게 현재를 살게 하고 미래를 준비하게 한다’던 글귀를 가슴에 새기며 삶의 터전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