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 ‘386’으로 남고 싶어요”

[전대협 세대를 찾아서 ②] 천안의 시민운동가 권혁술 법무사

안진걸(gingirl) 기자

전대협동우회(회장 : 윤진호)는 6월 항쟁 및 전대협 20주기를 맞아 기획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동우회측은 “지난 시절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싸웠던 전대협 세대들의 현재 고민과 미래의 꿈을 청취하고 이를 동시대인들과 공유하기 위해 연속 인터뷰를 기획했다”고 밝혔습니다. <필자 주>

대담·정리 : 윤진호 전대협동우회장, 안진걸 한국청년연합회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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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개혁의 좌표조차 휘청이는 시대, 여전히 민족통일이 우리의 희망이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시민운동의 사회적 영향력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지만 그는 “평생 시민운동을 하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감히 말합니다.

천안 KYC(한국청년연합회) 공동대표, 천안 풀뿌리희망재단 이사인 권혁술 법무사. 그는 “제 오래된 소원이며, 일관된 관심이다. 그리고 우리 민족이 화해해고 협력해서 전쟁 없이 평화롭게, 경제적으로도 잘 살 수 있는 길이 통일이므로 이보다 더 희망찬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힘주어 말합니다.

그는 더 나아가 다가오는 대선에서도 경제문제, 부동산 문제도 핵심 쟁점이 되겠지만, ‘평화와 통일문제’가 더 큰 쟁점이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누가 한반도에서 전쟁을, 전 민족의 공멸을 막아내고 평화를 지켜줄 수 있느냐” “지금도 진행되는 남북긴장, 북-미 공방의 와중에 누가 결국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남북 간에 화해와 동시에 북미간의 공방도 종식시켜나가느냐, 그러한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이냐”가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될 것이라는 겁니다.

광주에서 나고 자랐지만, 대학시절의 인연 때문에 이제 천안이 제2의 고향이 되어버린 그는 흔히 말하는 386세대의 전형입니다. 사람들은 ‘386=정치’를 연상하지만 그는 끝까지 시민운동가로 남고 싶다고 말합니다.

“386 중에 정치 안하고 평생 시민운동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그런 386들이 우리 역사를, 우리 사회를 더 많이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는 실제로 천안에서 시민운동에 열심입니다. 천안지역의 시민운동에 두루 참여하면서도 법무사로서 지역의 서민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상담활동도 열정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가 밝힌 ‘상담관’은 이렇습니다.

“상담을 잘 하는 것도 시민운동입니다. 지역 서민들은 법을 몰라 쩔쩔 매는 경우가 많고, 억울한 일도 참 많습니다. 그 분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최대한을 고민하는 것, 그런 것이 바로 시민운동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고대 서창교정 86학번(국문)으로 대학을 다니던 그는 ‘광주 학살’의 진상을 알고 학생운동에 투신했습니다. 이어진 투옥과 퇴학. 당시 함께 했던 다른 친구들은 모두 복학해 졸업장을 받았지만, 자신은 아직도 ‘고졸’이라면서 겸손히 웃습니다.

어느덧 아이 셋의 아빠. 그는 젊은 시절 즐겨하던 술도 줄이고, 생활과 생업, 그리고 시민운동에 열중입니다.

“서민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고민하는 것이 시민운동의 정신”

다음은 권혁술 법무사와의 인터뷰 전문입니다.

–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86학번입니다. 4학년 때 학생운동을 하다가 7명이 퇴학을 당했어요. 그때 함께 퇴학당한 친구들은 복학해 다 졸업했는데, 전 어쩌다 보니 복학도 못했어요. 학점을 83학점밖에 따지 못해서 복학할 엄두를 내지 못하겠더라고요. 사실 퇴학당하고 학생운동 정리하고 노동현장으로 가기 위해 용접기능공 자격증 따고, 조립라인에서 실제로 일하고, 그러다 93년도에 탱크 정보통신기기 만드는 큰 회사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노조 전 단계로 산악회 만들어 활동하다가 해고되고, 1년여 동안 복직투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복학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 그럼 해고노동자 출신이네요?

“제가 해고당한 이유는 ‘대학 중퇴인데, 고졸이라고 썼다’는 것입니다. 이력서에 허위기재했다는 겁니다. 지방·중앙노동위원회는 이를 부당해고로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고등법원에 행정소송을 냈는데도 패소했습니다. 당시에 해마루 법무법인 천정배 변호사(전 법무부장관)께서 무료 변론해줬는데도 졌어요. 또 천안지방법원에 해고무효확인소송을 냈는데, 역시 패소했습니다. 그쯤되니 법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원래 제 전공은 영문학인데, 제 소송을 도와준 천안지역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고, 공부하면서 결국 법무사가 됐습니다.”

– 법무사는 언제 되신 거죠?

“97년부터 공부해서 99년까지 3년 공부해서 합격증을 받았습니다. 5시까지 천안에서 일하고 서울로 학원 다니면서 공부했어요. 차라리 사시에 응시하기를 권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솔직히 무리라고 생각했죠. 당시 해고무효투쟁하면서, 지역의 일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근로자의 집’이라는 노동상담센터를 만들어 활동을 했었는데, 그때도 노동법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법무사가 됐네요.”

– 천안의 ‘상담맨’이라고 들었는데요?(웃음)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냥 사회적 직분에 충실하다 보니 상담을 많이 하게 된 것뿐이에요. 해방 후 법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해 대신 상담하고 글도 써주는 역할을 시켰는데 그게 법무사의 효시거든요. 처음에는 대서업자, 그러다 사법서사, 나중에 법무사로 이름이 바뀌었어요. 이걸로 밥도 먹고 살지만, 서민들과 함께하는 ‘호민관’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상담을 잘 하는 것도 시민운동입니다. 지역 서민들은 법을 몰라 쩔쩔 매는 경우가 많고, 억울한 일도 참 많습니다. 그 분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드리고,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최대한을 고민하는 것, 그런 것이 바로 시민운동의 정신 아닐까요?”

노동상담센터 활동하다 법 공부, ‘상담 잘하는 것’도 운동

– 86학번인데, 곧바로 학생운동에 뛰어드신 건가요?

“광주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도 사회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86년 대학 입학한 뒤 전방입소거부투쟁이 거세게 불었습니다. 곧바로 뛰어들었죠. 학교 오자마자 고등학교 동문 선배들, 과 선배들이 바로 운동현장으로 이끌더라고요.(웃음) 1학년 때 과대표부터 시작했어요. 또 문예비평이라는 동아리에서도 활동했고요. 그러다 3학년 때 단과대 학생회장, 4학년이던 89년도에 총학생회장을 했습니다.

평양에서 당시 열렸던 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 투쟁을 하다가 7월에 잡혀서 집시법, 보안법 2가지 위반으로 징역을 살았습니다. 89년도에 천안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도 겸임을 했었어요. 징역을 살다 나온 뒤 학생운동을 더 하기보다는 다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1년여 동안 후배들에게 인수인계를 해주고, 90년 말 노동현장으로 갔습니다.”

– 지금은 천안 KYC(한국청년연합회) 활동에 열심인데요, 단체 활동은 지역에서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나요?

“현재 천안 KYC 공동대표를 맡고 있어요. 계속 운영위원으로 활동했었죠. 천안 KYC가 작년 5.31 지방선거에서 의원을 4명 배출했어요. KYC가 10년 정도 활동하다 보니 지역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이죠. 현재 회비내는 진성 회원이 250여명쯤 됩니다. 물론 이제 시작이죠. 자리를 잡았지만, 과제는 아직도 많으니까요.”

“학생운동 노선 ‘자주-민주-통일’, 지금도 옳다고 생각”

– 시민운동에도 노선이 있을 텐데요, 특별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던가요?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당시 제 노선은 자주-민주-통일이었어요. 전 지금도 그 노선이 옳았다고 생각해요. 시민운동의 주제는 다양해졌고, 참 많은 일을 곳곳에서 해야겠지만, 여전히 저는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라고 생각해요. 제 오래된 소원이며, 일관된 관심이기도 합니다. 또 우리 민족이 화해해고 협력해서 전쟁없이 평화롭게, 경제적으로도 잘 살 수 있는 길이 통일입니다. 미국의 공세, 북한의 미사일, 일본의 재무장…. 통일 걸림돌이 돌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평화를 위해서라면 북한과 어떤 협의, 합의도 가능하다고 봐요. 평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으니까요.”

– 이번 대선의 최대 쟁점도 ‘평화’ 문제라고 생각하나요?

“전 대선에서 반전 평화문제가 최대 쟁점이 될 것이라 생각해요.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북-미간에 공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군사대국화 경향은 상당히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선제공격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말로만 평화와 통일을 이야기하는 데, 구체적으로 평화를 지켜내고 통일의 구체적인 비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이가 새로운 대통령이 돼야 합니다.

전쟁나면 모두가 죽잖아요. ‘누가 한반도에서 전쟁을, 전 민족의 공멸을 막아내고 평화를 지켜줄 수 있느냐’ ‘지금도 진행되는 남-북 대결, 북-미 공방의 와중에 누가 결국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남북 간에 화해와 동시에 북미간의 공방도 종식시켜나가느냐’, ‘그러한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이냐’가 국민들에게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 경제문제보다도 평화-통일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지금 회자되는 부동산 문제, 경제 문제가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되면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경제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라도 평화와 통일이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평화와 통일이 가져다 줄 경제적 이익이 엄청나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 아닌가요? 작년 북핵 위기 때 진짜 전쟁 나겠다 싶었어요. 일본의 선제공격론, 미국의 선제공격론, 중국-러시아마저도 모호한 입장…. 정말 아찔한 일 아닌가요. 단 몇 일의 전쟁으로도, 단 몇 개의 미사일로도 수십·수백만 명이 죽을 수 있는 한반도이니까요.”

– 전대협 세대이신데요, 열린우리당에 대해서도 여러 생각이 드시죠?

“연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국민들의 치열한 관심사에 대해 제대로 준비해서 치고나가는 것을 못 봤어요. 오히려 장관들 뒤꽁무니나 따라 다니고 있는 것 아닌지요. 우리 고객들도 ‘경제가 0점’이라고 하데요. 강남 잡으려다 서민들 다 죽인다고….”

– 열린우리당에 대한 실망은 정치권에 진출한 ‘386’에 대한 평가이기도 한데요.

“386 출신 중 국정이나 정치 참여자들에 대해, ‘경험은 부족하고 능력은 좀 그래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은 잘 해나갈 줄 알았는데 그것마저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게 국민들의 평가입니다. 또 동북아정책을 수행하면서 미국에 끌려 다니지 말았으면 했는데, 그것도 제대로 안된 것 아닌가요.”

“열린우리당, 장관들 꽁무니나 따라다니고 있는 것 아닌가”

– KYC 출신 후보가 지방선거에 당선됐다고 하는데, 직접 정치에 진출할 계획은 없나요?

“잘 할 수 있는 분들이 나가는 게 맞습니다. 전 그들을 후원하고 싶어요. 그리고 누군가는 시민운동을 계속하면서 지역의 등받이가 돼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그런 등받이가 되고 싶어요. 386 중에 정치 안하고 평생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그런 386들이 우리 역사를, 우리 사회를 더 많이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 시민운동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

“지난 시절의 꿈이 나를 밀어가는 겁니다. 변한 게 많지만, 때론 울컥하기도 하지만, 여러모로 조심하면서 살아가고 있죠. 지난 시절 변혁의 꿈은 우리의 성과이자 한계이기도 하니까요. 한참 때는 우리 지역을 건준, 인민위원회 모델로 운영해야 하는 게 아닌가를 검토하기도 했지요. 소설 속의 열정을 가진 청년으로 살았습니다. 이제는 좀 넓게 봅니다. ‘안 되는 것도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그럼에도 지난 시절 저희들의 운동은 일면 편협하고 고집스러운 시대의 한계를 담고 있기는 했지만 매우 정당한 운동이었다고 생각해요. 그 좌표도 맞았던 것 같아요.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런 이념들의 참뜻에는 좋은 면이 많잖아요? 하지만 ‘문제가 있다’ ‘오류가 있다’라고 인정하는 것이 지금의 문제를 수정하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 동시대의 386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가정을 가정답게 꾸리는데 주저하지 말자고 주장합니다. 배우자와 자녀를 사랑하고 축복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사회, 나라와 민족을 더 잘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주변의 어려운 이웃의 사정과 형편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함께 돕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자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것이 제 운동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