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2세 인권운동’ 김형율씨 애석한 죽음

29일 오전 9시경 병원 후송 도중에 숨져… 향년 34세


  이승욱(baebsae) 기자

▲ 고 김형율씨 영정. 지난 2002년 국내 처음으로 원폭피해자 2세라는 사실을 밝힌 김씨는 이후 아픈 몸을 이끌고 원폭 2세들의 정당한 대우와 치료를 요구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벌여오다 서른 넷 젊은 나이에 숨졌다.
ⓒ2005 오마이뉴스 윤성효

국내 첫 원폭피해자 2세라는 사실을 ‘커밍아웃’한 김형율(부산 거주)씨가 끈질긴 투병 끝에 결국 숨졌다. 아직도 젊은 나이인 향년 34세의 안타까운 죽음이다.

형율씨는 29일 오전 9시쯤 집에서 피를 토하다 병원으로 후송되던 도중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원폭 후유증으로 인한 ‘면역글로블린 M의 증가가 동반된 면역글로블린 결핍증’으로 여러가지 질병을 앓았지만, 죽음에까지 이른 것은 갑작스런 일이다.

형율씨 아버지 김봉대(67)씨는 “너무나 놀라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면서 “마지막 말을 남길 새도 없이 저 세상으로 갔다”면서 안타까워 했다.

고 김형율씨는 지난 2002년 3월 대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일본과 한국 정부의 원폭2세 불인정에 대해 항의하면서 국내 처음으로 언론에 자신이 원폭2세라는 사실을 공개한 인물이다.

어머니가 원폭 1세인 형율씨는 당시 “원폭 2세라는 사실을 공개하면 사회적 편견이 있을 수 있다”면서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건강이 악화돼 더이상 그냥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후 형율씨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면서 원폭2세들의 건강과 처우 등 사례와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국내에 있는 원폭 2세들과 관련단체들을 중심으로 지난 2003년 6월말 ‘원폭2세 환우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린 바 있다.

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기관지가 좋지 못해 잦은 감기에 시달렸던 형율씨는 건강이 점차 악화돼 가고 있었다. 이미 20살 무렵 ‘기관지 확장증’ 진단을 받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치료를 받아오고 있었다. 특히 심폐기능이 일반인의 20~30%에 미치지 못하는 등 생명의 위협을 항상 받아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김씨는 원폭 2세의 정당한 대우를 받기 위해 최근에는 일본 원폭피해자 행사에 참석하는 등 끈질긴 활동을 벌여왔다. 얼마 전 <오마이뉴스>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도 “건강 상태가 점차 악화되고 있어 걱정스럽다”면서 “하지만 조만간 원폭 2세들이 정당한 처우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을 것 같다”면서 기대감을 버리지 않았다.

고 김형율씨의 시신은 현재 부산대병원 영안실에 안치돼 있으며 유족과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빈소를 지키고 있다. 또 전국 각지의 원폭 2세들의 고인의 죽음을 슬프하며 빈소를 찾고 있다.

한편 고인의 장례 절차는 원폭2세 환우회와 유족들간 협의를 거친 후 일정이 정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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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로부터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
고 김형율씨 부산대 영안실 빈소 표정

▲ 고 김형율씨 부친 김봉대(69)씨가 아들의 빈소를 지키고 있다.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사 수정 : 29일 오후 5시26분]

고 김형율씨의 부산대병원 영안실 빈소에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원폭2세문제공동대책위’ 관계자들이 찾고 있다. 아시아평화인권연대와 건강세상네트워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의 단체 관계자들이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장례 절차 등을 논의하고 있다.

아시아평화인권연대 공동대표인 이광수 부산외국어대 교수는 “고 김씨는 장가도 가지 못했으며 부모들도 생활보호대상자라 더 안타깝다”면서 “관련 단체 관계자들이 상주 노릇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공동대표는 관련 단체들과 논의를 해봐야 알겠지만 3일장으로 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부친 김봉대(69)씨는 “작년 8월 서울대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서 다소 호전되기도 했고, 국회 공청회에도 참석하는 등 활동을 많이 해서 마음이 한결 놓였다”면서 “그런데 지난 20일 일본에서 열린 원폭피해자 관련 세미나에 참석한 뒤 돌아와 사흘 밤낮을 잠을 자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오늘 아침 8시50분경 피를 토하면서 고통을 호소해 119구급차를 불러 급하게 부산대병원 응급실에 왔지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면서 “아들로부터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생각 같아서는 내일 당장 장례를 치루었으면 하는데, 관련 단체들과 논의해서 3일장은 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들의 시신은 화장한 뒤 납골당에 안치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은 생후 20일부터 면역글로빈 벽혈병을 앓았고, 32년간 살면서 병치레를 계속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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