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왜 이런 평화길라잡이 활동을 하는 거야?”

단풍구경 하러 가자고 친구를 ‘꾀어서’ 지난달 24일 합천원폭피해자 복지회관에 다녀왔다.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의 어색함과 우리를 경계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시선에 머뭇거려지던 예전과는 달리, 6개월이 다 되어 가는 지금에는 친할머니를 뵈러 가는 듯 두근거림이 나를 설레게 한다.

지금으로부터 59년 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졌다는 것은 교과서를 통해 들은 새로울 것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그 원폭 피해자의 10% 이상이 우리 한국인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과 그들의 고통에 같이 아파하는 우리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나는 대학 2학년인 2002년부터 한국청년연합회(KYC)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올해에는 ‘평화길라잡이’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길라잡이는 59년 전 원자폭탄이 떨어진 그 장소에 계셨던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모여 사시는 합천원폭피해자 복지회관을 매달 한 번씩 찾아가서 정을 쌓고 그분들의 삶을 구술 증언하는 자원봉사자를 말한다.

지난달 처음으로 복지회관을 방문한 내 친구는 할머니와 인터뷰를 마친 나에게 물었다. 이런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솔직히 말해 나 역시 처음에는 머리 아프고 나와는 큰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또한 원폭투하일이 있는 매년 8월마다 연례행사처럼 복지관을 방문하고 떠나는 사람들에 익숙해져 있는 할머니들이 우리를 경계하는 분위기가 너무 부담스러워 힘들기도 했다. 그러나 한 달, 두 달 할머니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감에 따라 처음에 내가 느꼈던 할머니들을 보는 시선이나 그분들이 우리를 대하는 모습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평화길라잡이 활동으로 만난 원폭피해자들의 고통

나와 처음으로 결연을 맺은 송임복 할머니는 다른 원폭피해자에 비해 원폭 당시의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분이다. 방에서 인형을 갖고 놀다가 번쩍하는 것이 터지고 정신을 잃었는데 일어나 보니 집에서 꽤 멀리 떨어진 남의 집 지붕 위였다는 것이 할머니의 기억이다.

송 할머니는 원폭으로 인해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오빠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히로시마 곳곳에 피부가 ‘흘러내리는’ 원폭피해자 시체가 널부려져 있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리신다는 할머니.

할머니는 당시 부모님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중 원폭으로 부상을 입은 한 아저씨를 만났던 일을 들려주셨다. 제발 물 한 모금만 달라고 애원을 해서, 겨우 물을 구해 아저씨께 갔으나 이미 아저씨는 죽은 뒤였다고. 이처럼 송 할머니에게 원폭은 인생에서 가장 큰 상처였다. 송 할머니는 일본과 한국을 오고가면서 원폭에 대해 논리적이고 정확한 기억을 언론에 알리기 위해 애쓰시는 분이다.

반면, 두 번째로 결연을 맺은 강춘자 할머니는 애써 원폭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시려는 분이시다. 일본에서 태어나서 초등학교 수업을 받다가 원폭을 맞으신 강춘자 할머니는 원폭으로 피해를 받거나 마음에 상처를 받는 적이 없느냐는 질문에 한사코 자신은 ‘피해자’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혹시 원폭 피해자가 아닌 건 아닌가’하는 마음에 담당 사회복지사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원폭 때문에 고통을 받고,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으신 강 할머니는 좋았던 일들만 기억하려고 노력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원폭 휴유증으로 힘들게 살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했지만 일본에 살 당시에는 비교적 여유로웠고, 일본인들과의 사이도 좋았다고 강조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며 그 힘으로 버티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강 할머니만이 아니라, 복지관에 거주하시는 대다수의 노인 분들께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한 할머니는 어머니와 언니 자신이 원폭 피해자로, 모두 거동이 불편한데도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올 당시만 해도 엔화를 넉넉하게 가지고 와서 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고 하신다. 할머니들의 말대로 가정환경은 부유했을지 모르나, 원폭으로 한쪽 눈이 보이지 않거나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등 건강상태는 많이 걱정스러운 상태이다.

이들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구술 증언 작업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원폭 피해자는 결코 지나간 일도, 남의 문제도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또한 각박해져 가는 사회의 모습과 취업 걱정에 도서관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일상 속에서 숨이 막힐 때, 합천은 나에게 숨쉴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오히려 가진 것 나눠주는 할머니들

지난달 15일 인도주의 실천의사협의회의 원폭피해자 실태조사 지원으로 합천에 갈 일이 생겼다. 합천까지 와서 복지관에 들르지 않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찾아갔었는데, 괜히 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할머니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받아왔다.

우리를 보자마자 자신과 결연한 ‘손주’를 찾으시는 안말술 할머니는 손주가 인편으로 보낸 선물을 뜯어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시중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인스턴트 커피 한 통이었는데, 그것을 장롱에서 꺼내 자랑하시면서 커피를 타주시는 할머니. 또 한 분은 방 한구석에 귀하게 보관해 놓았던 한과를 주시면서 손주에게 전해 달라고 하신다.

나와 결연된 할머니를 뵙고 가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막 차를 타고 나서려는 순간, 강춘자 할머니가 돌아오셨다. 뜬금없는 방문에 너무 반가워하시던 할머니는 대뜸 주머니에 있던 돈을 모두 주시면서 가는 길에 과자를 사먹으라신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했는지 단감나무에서 단감을 가지 채로 꺾어 손에 쥐어주신다. 사람의 정이 무엇인지…. 순간 그것을 받아든 손이 너무 부끄러웠다. 하나를 주면 하나를 돌려받아야 한다고 여겨왔던 나인데, 할머니들은 자신이 가진 무엇이든 나눠주시려 하신다.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물었던 친구에게 이렇게 되물었다. 나라는 작은 존재로 인해 다른 사람이 웃는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지 경험해 본 적이 있느냐고 말이다. 그리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역사를 배우듯, 제2의 원폭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원폭으로 인해 이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다른 이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같은 잘못 되풀이 않기 위해 원폭피해 기록으로 남겨야

올해 국가인원위원회에 후원을 받아 시작한 구술 증언 사업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분명 원폭피해자인 것은 사실이나 건강수첩을 받지 못한 분들의 구술 증언 사업은 계속 될 것이다. 대량살상무기 원폭피해자는 제국주의 전쟁의 희생양이다. 또한 일본에 거주하지 않는다고 하여 건강수첩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일본의 억지이다. 피폭자는 지구 그 어느 곳에 있어도 피복자이다.

물론 신뢰로 이어진 할머니들과의 관계 또한 변하지 않을 것이다. 행사마다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즐거워하셨던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면 뒤죽박죽 엉망인 머릿속이 차츰 맑아짐을 느낀다. <어린왕자> 속 여우가 길들여졌듯이 나도 우리 할머니에게 길들여진 것은 아닐까?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사람은 두 손을 꽉 움켜진 사람이 아니라 두 손을 활짝 펼친 사람이다. 자원봉사는 꽁꽁 언 손을 녹이는 햇살과 같다. 건조하게 반복되는 하루에 쉼터 같은 역할을 하는 자원봉사활동. 그 중에서도 원폭피해자 할머니와의 만남은 잊혀져가는 슬픈 과거를 되새김질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허전한 내 가슴에 불씨를 지피어주는 소중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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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는 한국청년연합회 대구지부가 주최한 원폭피해자 구술 증언 자원봉사를 지난 6월부터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