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역 근대사, 골목골목에 묻어 있다”

2월 27일 대구KYC ‘일제강점기 대구지역 역사 현장을 찾아서’ 개최

▲ 행사 참석자들
 
ⓒ2005 허미옥
▲ 김일수 교수
 
ⓒ2005 허미옥

공구골목으로 알려진 북성로와 곽병원 뒤쪽길인 서성로를 지나다보면 일본식 건물이나 골목이 눈에 띈다.

꼼꼼히 살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대구 지역 근대 역사적 흔적이 이 길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지난 2월 27일 한국청년연합회 대구본부(이하

대구KYC)가 준비한 ‘일제 강점기 대구지역 역사현장을 찾아서’ 프로그램에 단체 회원과 대구시민 30여명이 참석했다.

안내자인 김일수(영남대 민족문제연구소)교수의 꼼꼼한 설명으로 무심코 지나던 길 하나하나에 대구지역 근대사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대구 침탈의 근거지였던 대구역. 보수 되기 이전에 가장 아름다운 역사로 알려져 있었지만, 일제가 대구뿐만 아니라 내륙을 침탈할 때

그 중심은 철도였다”는 김일수 교수는 “일제는 대구역을 건설하고, 대구의 성벽을 허문 후에 그 일대를 식민지 도시로 바꾸었다”고 주장했다.

결국 대구역에서 북성로를 거쳐 서성로, 달성공원까지 일본인의 상업지구가 형성되었다. 때문에 유독 이 골목길에는 일본식 골목과 건축물

잔재들이 많다.

조선식산은행, 장진홍 폭탄투척 미수사건




좌: 대구중부경찰서, 우 : 산업은행
 
ⓒ2005 허미옥

서문로를 거쳐 경상감영공원과 대구중부경찰서가 위치한 곳. 이 길은 식민지 지배기구인 관청과 억압기구였던 대구경찰청

그리고 수탈기구였던 조선식산은행(현 산업은행 건물)이 있던 곳이다.

“어,이곳에서 폭탄투척 사건이 있었다고?”

대구시 중부경찰서 바로 옆에 위치한 산업은행 건물을 보면서 참가자 대부분은 의아해하는 분위기였다.

김일수 교수는 “산업은행 건물은 대구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되고 완벽한 일제식 건물”이라며 “이곳에서 장진홍 폭탄투척 미수사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일본 상업지구=3·1독립만세 시위대의 이동경로

한편 이 길은 일본인들의 상업지구기도 했지만 3·1독립만세 시위대의 이동경로기도 했다.

“대구에서 만세운동은 3월 8일경이었다”는 김일수 교수는 “대구 서문 밖에서 열렸던 서문시장에서 시위가 시작되었고 이날 장에 왔던 많은

대구민중들이 시위에 참석했다”며 만세를 외치고 난 뒤 이들은 식민지 폭압기구가 있던 서문로를 행진, 경상감영공원근처로 집결했을 것이다”고

밝혔다.




최제우 나무
 
ⓒ2005 허미옥

또 “경상감영공원으로 향하는 또 다른 길, 즉 서문시장과 제일교회와 계산성당을 지나서 경상감영공원으로 향하는

길은 주로 학생시위대의 행진코스”였다고 그는 말한다.

한편 대구시경찰서(현 중부경찰서) 뒤쪽 종로초등학교에서 최제우 나무도 발견할 수 있었다. 최제우 나무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첨부되어

있었다.

“(중략)마침내 전통 민간사상과 유불선의 장점을 융합하는 인내천(人乃天), 즉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평등사상을

주창하는 민족종교, 동학을 창시하였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민심을 혼란케 한다는 죄목으로 경상감영감옥(*현 대구종로초등학교)에 구속시켰다가

아미산에서 처형하였다. 수령이 400년 정도 된 이 회화나무는 억울하게 희생된 그의 감옥생활을 지켜보았을 것으로 생각되어 ‘최제우 나무’라

명명하였다.”

일제시대 조선인 밀집지역-종로, 약전골목, 뽕나무 골목




조선인 부유층이 살았던 전통한옥. 대문앞에 전화번호가 부착되어 있다
 
ⓒ2005 허미옥

한편 점식식사 후 둘러보았던 종로 일대와 진골목, 약전골목 등은 대표적인 조선인, 특히 부유한 조선인들 밀집지역이었다.

이 곳을 지나다 보면 전통적인 한옥과 더불어 화교들이 살았던 화교의 거리도 찾아 볼 수 있다. 또 대구의 대표적 골목이자 유명 지식인

즉, 이상화, 서상돈 등이 살았다던 속칭 ‘뽕나무 골목’도 볼 수 있었다.

특히 진골목쪽에는 부유한 조선인 가옥임을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상징물도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은 대문앞에 집 전화번호를 부착해 두었다.

현대적 관점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나름대로 부를 상징하는 그들 나름대로의 표현양식이었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 참석자 대부분은 “내가 발딛고 있는 이 곳이 역사의 중요한 현장이라는 것이 너무 놀랍다”라며 “역사를 너무 딱딱하고, 암기용

지식으로만 제한했던 예전의 모습을 반성하고 역사는 삶 그 자체라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입을 모았다.


“이

길을 돌면서 우리 가족史를 다시 확인했어요. “
[인터뷰]박경호,

배혜경씨 가족




박경호, 배혜경씨 가족
 

이번 답사에 참가한 한 가족은 “이 코스를 돌면서 우리 가족史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했다.

박경호, 배혜경씨 부부와 그들의 아들 성현(9)과 범현(군)을 만났다.

– 이번 답사에 참석하게 된 계기는?

“신문기사를 보고 참석하게 되었다. 사실 대구에 살고 있지만 과거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 대구의

모습이 궁금했다. 그들이 어떤 길로 걸어다녔고, 당시에 상징적이었던 건물이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했다.”

-이 코스를 돌면서 가족史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했는데?

“진골목을 지나면서 봤던 H병원은 큰 아들 성현이가 태어난 곳이다. 또한 계산성당 맞은편 제일교회 옆

아파트에서 성현이는 어린시절을 보냈다. 성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던 저 오르막이 대구 만세운동당시

많은 학생들이 태극기를 품고 걸어 왔던 길이라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예전에 우리가 살던 곳과 지나

다니던 길들이 대부분 주차장으로 변했거나, 다른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는 것 같았다.”

– 날씨가 매우 추워서 아이들에게는 힘들었을텐데,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일단 읽을만한 자료가 있었으면 좋겠다. 모든 내용을 설명에 의존해야 하니, 골목과 길이 익숙하지 않은데

그 내용까지 접목시키기에 다소 힘든 점이 있었다. 골목지도 등이라도 있으면 그것을 자료로 해서 좀더

쉽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박경호, 배혜경씨 가족은 답사를 마치고 아이들과 함께 예전에 살던 곳을 한번 더 돌아보고 가겠다며 이미

지나왔던 길로 다시 방향을 돌렸다. / 허미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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