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경복궁 수습 10기 진우영입니다.

우리궁궐길라잡이가 뚜렷이 새겨진 저만의 이름표를 받은 지도 20여일이 지나갑니다.

처음 그 느낌, 그 순간, 그 눈빛, 그대로 모든 일을 맞이한다면 이 세상에 무서운 일이란 없을 겁니다. 저에게 수습 우리궁궐길라잡이가 된 소감을 이야기해 달라는 서울KYC 간사님의 끊임없는 노고 끝에 이 글이 이 세상에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운을 띄우게 씁니다.

제가 처음에 어떤 마음으로 교육에 신청하게 되었으며 어떤 교육을 받았고 배정된 궁궐에서의 첫 안내를 기다리는 이 시점에서의 감회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궁궐길라잡이 10기 교육을 받기까지

2005년 8월초에 우연한 기회로 경복궁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서둘러서 뛰어오는 바람에 숨이 어찌나 찬지 한참을 숨을 고르고 있는데 영제교 앞 게시판에서 여러 명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누군가의 설명을 듣고 있는 것이 보이더군요.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사람들 사이로 얼핏 얼핏 보이는 궁궐길라잡이분의 모습이 명확해지면서 그 순간 이후로 그 분이 설명하시는 내용을 참 열심히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날은 저에게 많은 걸 생각나게 하는 날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작은 안내 책자에 나옴직한 설명 몇 구절에서 제가 느낀 감흥은 그 이상 이었습니다. 그것은 하찮은 종이조각에 써 있는 내용이더라도 설명하는 사람의 순수한 열정에 따라 청자에게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는 장이 될 수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해주는 기분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전 이 자리를 통하여 우리나라 역사를 인식하는 하나의 흐름을 익히고자 했습니다. 어떤 흐름을 잡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윤곽과 뼈대를 이루는 주춧돌을 먼저 읽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시대의 주춧돌이란 현재 남아있는 궁궐에 스며져있는 사상과 아름다움이 아닐까라는 강한 느낌이 든 것도 궁궐길라잡이 분들의 설명을 들은 후 배운 것이었습니다.

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우리 옛 건축물의 미적인 조화로움과 그 자그마한 조각품들이 우리에게 속삭이는 상징적인 의미들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느껴지는 순수한 아름다움에 있습니다.

제가 느낀 이 감정을 다른 누군가에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이런 소중한 기회를 갖게 되어 좋았습니다. 저의 작은 열정이나마 십분 발휘하여 선배 길라잡이 분들의 마음을 이어받아 우리나라의 궁궐에서 살아 숨쉬는 옛정을 느끼고자 합니다.

2. 교육을 받으면서

홍순민 선생님의 수업에서는 조선시대 궁궐에 스민 기본사상과 정통사상에 대한 수업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지난해에 비해 보충 된 수업인 궁궐에서 지내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가장 많이 납니다. 궁이라는 곳은 사람이 살았던 곳이라는 사실은 현대의 사람들은 간과하기 쉬운데 그런 면에서 우리와 같은 사람이 머문 장소로소의 궁을 재조명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조선시대 관료 직책 중 우리가 흔히 들어본 양반, 사관이나 수군절도사 같은 지배계층의 역할과 그 사람들의 애환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수업도 기대해 봅니다. 무엇인가를 배울 때는 거창한 이름보다는 실제 그 물건, 그 개념의 이면에 있는 속 이야기를 함으로써 그 실체에 가깝게 다가 갈수 있다는 걸 매번 느낍니다.

뒤이어 이어진 첫 답사 장소인 창덕궁에서 맛 본 우리 옛 조상의 얼이 깃들여진 옛 정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비공개 답사 지역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낙선재 후원의 높은 언덕위에 자리한 취운정이라 불리는 아담한 정자로 그 모습은 지금도 제 머릿속에 아로 새겨져 있답니다.그 곳에 서 내려다본 그 풍경이란 한 마디로 장관이었습니다. 취운정의 옆에서 독특한 무늬 돌을 띤 세부분이 하나로 연결된 낮은 담장위로 보이는 광경이 예술인데 저 멀리 북한산 자락이 어설피 보이며 가까이로는 나무의 잎사귀와 잎사귀들이 자연스레 맞물리며 이루는 아늑한 맛이 나는 그 끊어질듯 이어지는 곡선이란 죽음이었습니다. 그 산자락 안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궁 안의 여러 전각들도 보기 좋았습니다. 나뭇가지 사이 사이로는 한옥의 지붕들의 옆면이 그리는 뭐라 말 할 수 없는 조화란 그 자체로 예술 이었습니다.

그 때 그 광경을 다시 그리니 그 감흥이 쉽사리 사라지질 않네요. 그 이외에도 부용정의 창 사이로 보이는 주합루도 좋았습니다. 예년에 비해 춥지 않은 날씨덕분에 저희 10기들은 창덕궁을 시작으로 맞이한 답사일정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그리고 또 기억에 남는 일정으로는 종묘에 대한 3차례의 수업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올 해 처음으로 시작하는 종묘 수업에는 그 어느 때보다 선배님들의 열띤 수업 열기에 저희도 덩달아재미있게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생소한 조선시대의 음악으로 첫 운을 띄어주신 송혜진 선생님의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수업은 으뜸이었습니다. 유교국가인 조선의 국시(國是)인 예악(禮樂)에서 예(禮)는 유교에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지만 악(樂)으로서의 종묘제례악은 이전에 접해보지 못한 조선시대의 음악(音樂)을 새롭게 알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10기 교육일정의 마무리는 사무국에서 준비한 길라잡이 활동의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였습니다.

처음으로 느꼈던 호기심, 그 첫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타성(他姓)에 젖게 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봉사 하는 마음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뜻 깊은 교육의 마무리였습니다.

3. 첫 안내를 준비하며

현장 수습활동 발대식을 시작으로 이제는 더 이상 교육생이 아니라 어엿한 수습으로서의 일정이 각 궁궐별로 있었습니다. 제가 소속된 경복궁에서는 3월의 마지막 2주에 걸쳐 권역별 안내가 있었으며 곧 이어 1:1안내를 시작으로 첫 단추를 매만지게 됩니다. 교육받으러 정동 길을 다닐 때 걸으면서 느낀 일화 하나를 이야기 해드리며 글을 맺을까 합니다.

교육을 들을 때 저는 주로 학교에 있다가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2호선을 타고 오는지라 보통 시청 역에서 내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우리가 수업을 듣는 프란치스코 회관까지 쉬엄 쉬엄 걸어갔었습니다. 교육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는데 그 날도 예외 없이 덕수궁 돌담길위로 달빛을 받아가며 걸어가는데 밤이라 그런지 돌담 바닥에서는 조명을 비쳐주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앞에서 걸어오는 3~4세로 보이는 꼬마 둘이 아주 재미나게 작은 손으로 그 조명을 세상에서 처음으로 보듯 땅바닥을 만졌다 폈다 하면서 바닥을 서성이며 놀고 있는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쌍둥이처럼 옷도 초록, 핑크 잠바를 나눠 입고 뛰어 다니면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다시 떠 올리니 제 입가에도 웃음이 만발해서 좋았습니다. 그 꼬마들 뒤로는 부모인 듯 한 분들이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이 혹시나 넘어지지나 않을까 살피며 걸어가는 모습을 떠올리니 우리 수습 길라잡이와 겹쳐지는 모습이 있어 애기하고자 합니다.

처음 우리의 눈에 비친 길라잡이라는 친구는 세상에서 처음으로 눈앞에 아른거리는 빛을 바라본 그 아이들의 느낌과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 됩니다. 허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아이들의 눈앞에 비친 그 아름다웠던 빛은 때로는 우리가 그러듯 눈살을 찌푸리며 일부러 피하게 되는 형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닥으로 비쳐지는 광선의 아름다움과 순간 눈에 비추어진 그 불빛에 온 정신을 쏟아가며 유심히 살피게 된 첫 호기심. 처음에 우리가 느꼈던 그 순간, 그 눈빛을 우리 기억에 아로 새긴다면 처음 시작하는 이 자리뿐만 아니라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 해도 잊혀지지 않는 순간이 될 것입니다.

우리 곁에는 늘 그 꼬마들을 지켜보는 부모처럼 우리의 의지가 되어주시는 선배 기수선생님들의 따스한 온기에 마음속 깊이 감사의 말을 전해 드리며 글월을 맺을까 합니다.

꽃피는 날 꽃지는 날

– 구광본

꽃피는 날 그대와 만났습니다.

꽃지는 날 그대와 헤어졌고요.

그 만남이 첫 만남이 아닙니다.

그 이별이 첫 이별이 아니고요.

마당 한 모퉁이에 꽃씨를 뿌립니다.

꽃피는 날에서 꽃 지는 날까지

마음은 머리 풀어 헤치고 떠다닐 테지요.

그대만이 떠나간 것이 아닙니다.

꽃지는 날만이 괴로운 것이 아니고요.

그대의 뒷모습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나날이 새로 잎 피는 길을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