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 평화, 인권 운동가 짧은 삶을 살고 간 청년 김형율씨의 죽음에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어릴적부터 폐렴을 자신의 병으로 간직하게 살았지만, 자신의 병의 원인을 알고부터 그는 피폭자 환우 2세와 피폭자 문제의 해결을 위해 투쟁했습니다. 김형률씨는 자신의 삶의 문제를 넘어 원폭피해자 전체의 문제를 위해 노력한 반핵, 평화, 인권운동가입니다.

원폭2세의 삶의 처지와 조건을 개선하고 보호받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 제출과 실태조사, 특별법제정 공동대책위 결성 등은 그의 삶의 투혼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최근 김형률씨는 죽기 직전까지 일본 동경에서 과거청산을 위한 심포지움에서도 일본의 반성과 사죄를 촉구하였고 원폭2세 환우의 삶에 관심을 온몸으로 호소하였습니다.

원폭2세 환우 김형율씨의 죽음앞에 마음이 무것운 것은 김형률씨와의 인연도 있겠지만 자신의 처지와 조건의 문제를 넘어 원폭피해자 전체의 문제 해결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고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

대구KYC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원폭피해자 문제해결을 위해 다시 한번 노력할 것을 다짐합니다.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05년 5월 29일

대구KYC 공동대표 이상욱, 이홍우

원폭 2세 김형률(36세)씨 삶과 투병

김씨의 병명은 ꡐ선천성 면역글로불린 결핍증ꡑ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인 1983년 급성폐렴으로 입원한 이래 지금까지 10여차례 폐렴으로 입원했다. 김씨의 폐는 30%만이 정상일 뿐 나머지 70%는 그 기능을 잃었다. 8년 전인 1995년 입원했을 때 당시 의사로부터 ꡒ면역글로불린 결핍증의 원인이 어머니가 원폭 피해자였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ꡓ는 말을 들었다. 2001년에는 그의 병이 ꡐX염색체 열성유전에 의한 반성유전병ꡑ에 속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쉽게 말해 그의 병이 어머니의 X염색체로부터 온 ꡐ모체유전ꡑ이다.

그의 어머니는 1940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나 1945년 6살 때 원자폭탄을 맞았다. 어머니는 12년 전 등허리 종양 제거수술을 받고 피부병을 계속 앓는 등 지금까지도 원폭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김씨와 같이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동생은 생후 1년6개월만에 폐렴으로 숨졌다.

원폭 2세 김형률(음력70년 6월 25일생)씨의 삶과 죽음

▶ 2001년 6월 1일 원폭피해자 곽귀훈씨(현 한국원폭피해자협회장)씨의 재외피폭자 지위확인소송에서 승소, 원폭피해자 문제가 언론에 부각되자, 김형율씨 대구KYC 사무실을 방문하여, 자신의 처지와 조건에 대해 호소함, 대구KYC 김동렬 사무처장의 권유로 반핵, 인권 ,평화운동가로 삶을 살며서 자신의 문제와 원폭피해자 문제를 제기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부모님의 동의는 어렵지 않으나, 자신의 커밍아웃으로 형제들이 감당해야 할 불이익에 대해 고심하였다. 1년의 고심끝에 부친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기로 하였다.

▶ 2002년 한국 최초로 원폭2세 환우임을 기자회견을 통해 밝힘

2002년 3월 대구KYC(대구 남구 봉덕3동) 사무실에서 부친과 함께 ‘원폭2세 환우’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이 원폭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원폭2세 문제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 ‘원폭2세 환우회’ 결성 – 한국 원폭2세 환우 카페(www.http://cafe.daum.net/KABV2P)다음를 만들어 자신의 처지와 조건을 알리고자 노력함 – 그의 글을 볼 수 있습니다.

▶ 2003년 8월 5일 ‘원폭 2세환우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 결성 및 진정서 제출

▶ 2004년 2월 국가인권위원회 – 원폭피해자 2세의 기초현황과 건강실태조사 시작

▶ 2004년 4월, 원폭피해자 문제해결을 위한 입법 청원 기자회견

▶ 2005년 2월 14일 – 국가인권위원회 원폭, 1~2세 실태조사 결과발표

▶ 2005년 5월 18일 – 원폭폭탄 피해자 문제해결을 위한 방향 토론회 참가

▶ 2005년 5월 19~ 26일 일본 동경에서 과거청산을 위한 국제연대협의회 주최로 열리는 심포지엄 참여

▶ 2005년 5월 27일 – 원폭피해자 지원 특별법 제정 공대위 회의에 건강상 이유로 불참

▶ 2005년 5월 29일 오전9시 5분경, 부산시 동구 수정4동 수정 아파트(051-467-5757)에서 끝내 숨지다. (부산대 병원 영안실 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