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2004년 11월 30일, 제가 다니던 대학교에 재입학원서를 제출하였습니다. 1986년 6월에 마지막으로 대학을 떠난 후 처음 가보는 학교였습니다.

학사지원과의 재입학을 담당하는 여성분이 학부인지, 대학원인지 물었을 때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였지만 학부라고 말하고 보호자 란에는 엄마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으니 제가 가장인데 아내를 보호자라 써도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렇게 해도 되겠다고 의견을 교환한 후, 20여년만에 찾아온 학교라고 말하고 나왔습니다. 이전과는 딴판으로 바뀌어버린 교정을 지나면서 담배 한대를 피우고 학생시절 먹고 싶었던 ‘떡라면’을 원없이 먹었습니다.

대학시절 교문을 앞에 두고 던지던 돌과 그걸 막던 전경들의 모습이 떠올랐고 지나간 세월에 ‘참 그 때 그렇게도 많이 싸웠었지’하며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지나가는 학생들의 모습은 저렇게도 애띤데 저도 그 때 저렇게 보였을 것이라 생각하니 후배들이 착해보이고, 친근감이 들었습니다.

12월 4일 신행정수도 사수 서울 집회를 준비하느라고 오늘 밤에는 연기군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신행정수도 지속추진 연기군 비상대책위와 내가 몸담고 있는 자치분권전국연대가 공동의 집회를 개최하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고, 또 재입학이 가능한지도 모르지만 재입학 하게된다면 저의 활동때문에 공부에 전념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알지만 여러 생활의 불편 때문에 졸업을 하여야 겠다고 마음 먹은 것 자체가 내게는 획기적인 변신입니다.

결혼할 때 대학만은 졸업하겠다고 아내를 속였던 것도 죄스럽고, 입시학원 강사를 하면서 교육청 직원들이 학원에 감사를 나와 수업못하고 집으로 돌아간 것을 생각하면 졸업은 해놔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학창시절에는 대학을 졸업한다는 것이 죄였는데 이제는 졸업을 안 한 것이 죄가 되니 세상만사 새옹지마, 인생이 편한고 자유로운 것 만은 아니라고 생각됩디다.

오늘은 정말 바쁘네요, 어제밤에 대전에서 올라온 후배를 기다리다 새벽 3시에 잤다가 오늘 아침에 학교 갔다 온 후 바로, 집회준비회의하고 또 오늘 밤에 충남 조치원으로 내려가야 하니, 인생이 고달프다는 느낌도 가지게 됩니다.

한양대 삼민투 위원장을 지낸 부천의 김영철 선배님께서는 내일 집회 신고 내러 가신다고 합니다. 수원자치시민연대의 노민호 사무국장과 집회에 관한 전화를 길게 하고 재정과 앰프, 노래패 기타 등등을 얘기하였습니다.

20년이 지나도 나의 삶은 마차가지이구나 어떡하면 더 획기적인 변심(?)을 할 수 있을 까 고민입니다. 그래도 대학을 졸업하면 학원을 차려 아이들을 가르치고 돈도 벌 수 있겠다 싶어서 조금은 행복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득을 볼 수 있도록 행정수도가 이전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