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새터민 출신 첫 NGO 상근자 정영철(25)씨,

…”북한학 배워 통일에 작은 도움이라도..”

“고향… 공기가 참 좋은 곳입니다. 떠나올 땐 몰랐는 데 남한에 오니깐 고향에 대한 느낌이 각별합니다.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향에 대해 묻자 함경북도에 남겨두고 온 가족을 먼저 생각했다.

“광야에 혼자 버려진 느낌이었습니다”

대구지역 시민단체인 대구KYC의 새터민(북한이주민) 출신 상근자 정영철(25)씨. 21세 때인 2004년 북한을 떠나 한국에 정착한 그는 대구KYC의 간사로 일하고 있다.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 상근자 가운데 새터민 출신은 그가 유일이다. 지역 새터민 출신 1호 상근자인 그를 만났다.

정씨는 “대부분 북한사람이 경제적인 이유로 북한을 탈출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남한에 올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개인적인 이유로 2004년 3월 중국으로 건너갔다.

처음에는 중국에서 돈을 벌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경제 사정이 점점 어려워져가는 북한의 현실은 그에게 더 이상 희망이 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중국에 머무는 동안 남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꿈을 찾아 홀로 한국행을 택했다.

“까마득했습니다. 살아갈 일도 막막하고… 광야에 혼자 버려진 느낌이었습니다.”

2004년 8월 대구에 정착한 정씨는 당시의 느낌을 이같이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사람이 너무 그리웠다고 했다. 대구 북한이주민지원센터의 새터민 정착 도우미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정씨는 남한사회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를 듣고, 한국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초보적인 지식을 배웠다.

정착지원금 만으로는 생활 어려워…한때 공장에서 일하기도

그 후 정씨는 북한이주민지원센터의 소개로 2005년 6월 대구KYC와 인연을 맺게 됐다. 대구KYC가 진행하는 새터민 정착 지원 프로그램(새터민 멘토링)의 멘티(멘토링에서 상담을 받는 사람)로 들어온 것. 그는 대구KYC의 새터민 정착 지원 프로그램의 상담을 받으면서 한국사회를 익히는 한편 취업을 준비했다. 정착 지원금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2005년 말 지역 한 취업박람회를 통해 면접을 본 그는 경기도 안성의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에서부터 함께 한 새터민 친구 2명과 같이 그해 12월부터 경북 성주군의 한 LCD 모니터 제조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정씨는 석달만에 그만두게 됐다.

“적응 문제는 둘째 치고, 앞으로 살아갈 방향에 대해 많은 갈등을 했습니다. 일을 해서 당장에 돈을 벌 것이냐, 아니면 공부를 해서 지식을 쌓아 앞으로 고정적인 직업을 가질 것이냐… 결국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일을 관두게 됐습니다.”

새터민 ‘멘티’에서 ‘통일길라잡이’로..

북한에서 정씨는 한국으로 보면 초등학교 6학년에 해당하는 고등중학교 2학년을 다니다 가정형편으로 학업을 중단하게 됐다. 한국의 초등교육부터 다시 밟기로 마음먹은 그는 2006년 2월부터 공부를 시작해 초졸 검정고시를 합격했다. 최근에는 중졸 검정고시를 치뤄 다음 달 합격을 기다리고 있다.

이후 그는 대구KYC 새터민 정착 지원 프로그램의 꾸준한 상담을 받으며 한국사회를 배워왔다. 그러다 올해 1월부터는 대구KYC ‘통일길라잡이’를 담당하는 상근자로 일하고 있다. 새터민 정착 지원 프로그램 상담을 받던 그가 새터민의 남한사회 정착을 돕는 프로그램의 실무자가 된 셈이다. 정씨는 “새터민 직장체험프로그램에 참가해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대구KYC에서 반상근을 한 경험이 상근자로 뽑히는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에 상근하면서 느낀 점을 묻자 정씨는 “대구지역이 보수적이라 시민의 생각도 보수적일 거라 짐작했는데 진보적인 시민사회단체가 의외로 많아 놀랐다”면서 “시민사회단체들이 회원들의 힘으로 운영되는 것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씨가 맡고 있는통일길라잡이 프로그램은 대구KYC가 진행하는 멘토링 사업의 하나로 새터민들의 남한사회 적응을 돕는 1:1 결연 프로그램이다. 요즘 그는 5기째인 통일길라잡이 멘토와 멘티를 확보하는 일에 한창이다. 그 일이 쉽지 만은 않은 모양. 그는 “새터민들이 남한사회에 빠르게 정착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지역 대학생 위주로 멘토를 모집 중인데, 지원자가 많지 않아 안타깝다.”며 어려움을 털어놨다.

“통일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통일에 작은 도움을 주기 위해 힘들어도 보람을 가지고 일하려 합니다.”

시민사회단체 상근자, 그 길을 걷게 된 이유를 묻자 정씨가 말했다. 정씨가 공부를 계속 하려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정씨는 오는 8월 고졸 검정고시를 본 뒤 대학에 진학할 생각이다. 하지만 합격해도 바로 대학에 가지 않고 기초적인 지식을 쌓는데 힘을 더 쏟으려 한다.

“남한 사람들은 몇 십년에 걸쳐 공부를 하는 데 우리 같은 새터민이 검정고시를 통해 짧은 기간에 대학을 간다 해도 남한 사람들을 따라잡기는 힘들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1년 정도 공부를 더 하고, 대학은 그 다음에 가려고 합니다.”

정씨는 북한에 대해 체계적으로 알기 위해 대학에서 북한학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북한학을 공부해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북한학을 공부해 통일이 된 뒤 북한에 가게 되면 북한 사람들에게도 남한에 대한 정보를 알려줘 남과 북이 교류하는데 도움을 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지금’이 가장 절실하다”

“사람들 만나고, 주위에 아는 사람이 늘어날 때가 가장 뿌듯했죠.”

반면, 가장 힘들어 했던 것은 언어적인 장벽과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이었다.

그는 “우리는 ‘지금’이 가장 절실하다.”면서 “새터민들은 언어와 문화적 차이를 잘 극복하고, 당장 적응을 잘해 남한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길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고 있는 정영철씨.

남북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는 정씨의 희망은 그를 항상 새로운 도전을 위한 출발점에 서게 하는 듯 했다.

“한국에 처음 올 때도 시작이었고, 앞으로도 매 순간 시작이란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가려 합니다.”

정씨는 대구시 달서구의 한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다. 결혼에 대해 묻자 정씨가 말했다.

“아직 생각 없습니다. 결혼 후에는 책임감의 범위가 더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저에 대한 투자와 개발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글.사진 평화뉴스 남승렬 기자 pnnews@pn.or.kr / pdnams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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