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문제로 온 나라가 반일 감정으로 드높아 있습니다만.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가 올바른 과거 청산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국의 피폭자를 주체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지원 운동을 30년동안 전개했던 이치바 준코 선생님을 모시고 강연회를 개최하고자 합니다.

원폭투하 60주년 – 대구KYC 특별강연회

주제: 한-일 시민사회의 과제 – 조선인 원폭피해자의 삶과 인권

강사 : 일본의 지성 “한국의 히로시마” 저자 이치바 준코 선생님

일시 : 2005년 3월 17(목)일 오후 7시

장소 : 대구 청소년 문화의 집 4층(귀빈 예식장 맞은편)

■ 약력

1957년 4월생 (女)

1971년 부산에 사는 손진두씨의 건강수첩 취득소송을 계기로 한국피폭자를 구원하는 시민회 참여

2,000년 ~ 지금까지 한국 피폭자를 구원하는 시민회 회장..

저서 : 한국의 히로시마(역사비평)

■ 한국피폭자를 구원하는 시민회 활동

1) 1971년 손진두씨 한국인 원폭피해자 『건강수첩』 취득 소송 7년만에 승소

⇒ 1974년 일본 후생성 재판 도중 –

2) 2003년 곽귀훈(현 한국원폭피해자협회장)재외 피폭자 지위확인 소송 완전 승소

⇒ 그 결과 한국원폭피해자 3만 4천엔 건강관리 수당 지급

3)2005년 1월 평택에 거주하는 이근목씨 등 40명 미쯔비시 징용공 원폭피해자 소송 승소

일본 후생성의 402호 통달(방침)이 한국인 원폭피해자에게 정신적 피해를 주었다고

인정해 위자료 지급, 그러나 미지급 임금과 강제징용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기각

4) 2005년 – 한국인 원폭피해자 장제비 소송 승소

■ 한국의 히로시마 이치바 준코 (지은이), 이제수 (옮긴이)

■ 이 책은…

<한국의 히로시마>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의 실상을 파헤친 책이다.

오랫동안 한국의 피폭자를 지원하는 운동을 전개해왔던 지은이 이치바 준코는, 전체 한국인피폭자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이 합천출신이라는 사실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일제 강점기 합천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으며, 일본으로 건너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일본에서는 어떠한 삶을 영위했으며, 피폭 이후 고국에서 또는 일본에서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해 사료와 인터뷰 등의 자료를 통해 고찰하고 있다.

■ 저자는…

이치바 준코 – 1956년 히로시마현에서 태어났으며 오사카외국어대학의 강사로 활동 중이다. 1979년 1월 한국의 피폭자를 방문하고 현재까지 ‘한국의 원폭피해자를 구원하는 시민의 모임’에 관여하고 있다. 공편역한 책으로 <유리 파수꾼 - 한국여성작가단편집>, <일본이 나오는 한국동화집>, <사랑의 한국동화집>, 공저로 <강제연행의 기업책임>, <이웃나라로부터의 고발>, <지구의 여인들>, <여성의 성과 삶>, <도큐멘트 '일본국헌법'> 등이 있다.

이제수 – 1970년에 태어나 부산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경성대, 울산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2002년부터 ‘원폭2세환우회를 지원하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 이 책의 차례

제1부 한국인피폭자, 그 투쟁의 역사

제1장 버려진 한국인피폭자(1945~1966)

공포의 원자폭탄|피해자 10명 중 1명이 조선인|한국인피폭자라

불리는 사람들|조국의 무관심에 묻혀|일본에서는 피폭자원호가

시작되다|한일조약에서 정치의 질곡으로

제2장 일어서는 한국인피폭자(1967~1978)

‘주저앉아 죽음을 기다릴 수 없다!’며 협회 결성|’몸을 고쳐달라!’며

일본에 직접 호소|손진두 밀입국, 일본에서는 지원이 시작되다

손진두의 수첩재판투쟁|’보상될까?’라며 기대가 높아갔지만

드디어 일본에서의 치료의 길이 열리다

제3장 보상거부로 일관하는 일본정부(1979~1989)

한일 피폭자의 분리와 도일치료|한국인피폭자 배제된 ‘원폭피폭자대책

기본문제간담회’ 의견서|1970년대 말 한국인피폭자의 실태|언 발에

오줌누기 식의 도일치료|23억 달러 대일보상청구

전후 미처리문제로서 떠오르다

제4장 인도적 지원이 아닌 보상을(1990~ )

대통령의 방일로 해결?|굴욕적인 인도적 의료지원금 40억엔

1990년대 초반 한국인피폭자의 실태|40억 엔으로 무엇이 바뀌었는가?

‘피폭자원호법’으로부터도 제외|전후보상재판으로 이어져

‘살아있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제2부 ‘한국의 히로시마’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서장|합천과의 만남

한국인피폭자조사에 참가|한국인피폭자와의 만남

한국인피폭자문제의 출발점|합천과의 만남

지나치게 늦은 수수께끼 풀이

제1장 ‘한국의 히로시마’라 불리는 합천

합천이라는 곳|’한국의 히로시마’라 불리는 이유

제2장 합천에서의 일본식민지정책과 그 실태

1. ‘한일합병’ 전야의 합천

조선침략 야망|침략자 일본인의 눈에 비친 합천

2. 식민지지배의 실태

제1기 무력으로 구축한 지배기반(1919~1919년)

3·1 독립운동 – 독립에 목숨바친 합천 사람들(1919년 3~4월)

제2기 경작이 강요된 쌀·면화·누에고치(1920~1930년)

제3기 병참기지를 만들기 위한 농촌진흥운동(1931~1936년)

제4기 사람도 물자도 침략전쟁에 몰아넣다(1937~1945년)

제3장 합천사람들의 생활

총독부가 주도한 농산물의 증산정책|농촌의 쇠퇴가 확실하게 나타난

1920년대|농촌의 피폐가 급격하게 진행된 1930년대

농가에 적자를 가져온 것|’초근목피’로 연명|자작농에서 소작농

으로 전락|자연재해로 농촌피폐는 더욱 격화

제4장 히로시마와 조선인

1. 군사도시 히로시마의 형성

청일전쟁으로 인해 군사도시의 길로|침략전쟁과 함께 비대화

2. 히로시마의 조선인

히로시마거주 조선인 수|조선인에 대한 도항정책

제5장 합천에서 히로시마로 가는 길

합천과 히로시마를 연결하는 큰 파이프|사람들을 히로시마로 향하게

한 것|히로시마로 향한 사람들의 물결|파이프는 지연·혈연으로

만들어졌다|파이프가 연결된 히로시마의 마을|파이프의 열쇠가 된 인물히로시마에서의 생활

종장|원폭지옥에서 조국으로

히로시마시의 원폭피해|합천국 출신자의 원폭피해

조국의 해방과 귀국|’한국의 히로시마’라는 별칭을 얻은 합천

마치며

연표: 일본인·외국인 피폭자 불평등의 계보

인용·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