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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에 빼앗긴 삶 ‘영상’ 증언

합천서 피해자 17명 구술녹취 한국청년연합회 시연회 열어

“살려달라고 하다 죽고, 밤새도록 울고, 죽어나가고…, 학교 마당에다 주검을 모아놓고 휘발유를 뿌려서 화장을 하데예.“(구선이·75·여·원폭피해자)

10일 오후 2시 한국청년연합회가 세계인권 선언일을 맞아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삼성화재빌딩 대회의실에서 원폭피해자 생애 구술증언 영상 시연회를 열었다.

대형스크린에 비친 원폭 피해자들의 입을 통해 원폭투하 당시의 참상과 귀국이후 그들이 겪은 고통이 낱낱이 드러났다.

손아무개(74·여)씨는 15살때 원폭을 맞았다. 부모는 요행으로 생명을 건졌지만 귀국한뒤 후유증으로 몇년만에 아버지를 잃고 시름시름 앓던 어머니도 그 뒤 세상을 떴다. 손씨의 오빠는 당시 다친 상처로 평생 다리를 절어야 했다. 피폭자를 한센병 환자보다 두렵게 생각하던 당시 사회분위기 때문에 결혼 때는 시댁의 심한 반대를 겪어야 했다. 편견은 자식대까지 이어져 아들이 사귀던 아가씨와 파혼한 적도 있었다. 이날 증언에 나선 피폭자들은 대부분 손씨처럼 생활고와 원폭 후유증에 시달리며 힘겨운 생애를 이어가야 했다.

이날 공개된 영상물들은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의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한국청년연합회 대구본부가 지난 3월부터 10차례에 걸쳐 경남 합천 원폭피해자 복지회관을 방문해 손씨 등 17명의 구술증언을 녹취한 것이다.

원폭피해자 1명당 10∼50분 분량의 인터뷰 형식으로 제작된 영상물에는 당사자들의 신원 등 기초적인 사항과 삶이 담겨있다. 청년연합회는 이번 사업을 위해 대학생과 시민 등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원폭피해자와 1대1 결연을 맺고 증언을 모았다. 피해자들은 처음에는 말문을 열기를 꺼렸지만 매달 정기적으로 찾아가 나들이와 식사를 같이하는 등 자원봉사자들의 정성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대구본부 김동렬 사무처장은 “그동안 한국인 원폭피해자에 대한 조사와 기록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구술 증언 사업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대구본부는 이번에 만든 영상자료를 인터넷에 올리거나 역사연구 및 교육자료로 활용하고 원폭피해자 구술 증언집도 펴낼 계획이다.

대구/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