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원폭피해자를 돕는 시민모임’ 회장 이치바 준코



“일본정부 장례비조차 차별”

“국내외 원폭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이중잣대와 차별은 과거 식민지배를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교과서 문제나 독도 문제도 마찬가집니다.”

최근 정부가 ‘대일 독트린’에서 원폭피해자 문제를 언급한 가운데 ‘한국 원폭피해자를 돕는 시민모임’ 회장 이치바 준코(49·사진)가 8일 동안 한국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20일 출국했다.

이치바는 지난 13일 일본 오사카를 떠나 한국에 왔다. 그는 한국인 원폭피해자 장례비 지급소송 관련 자료 확보와 아직 일본 정부에서 건강수당을 못 받는 국내 피폭자들과 상담하기 위해 입국했다. 경남 합천의 원폭피해자 마을을 돌아보고 서울과 평택에서 미쓰비시 징용자들과 소송 문제를 협의했으며, 지난 17일 대구에서는 한국청년연합회 대구본부 회원들을 상대로 강연을 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그는 교토대 약대에 재학 중이던 1975년께부터 30년 동안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을 돕는 활동을 해왔다. 히로시마현에서 태어난 그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피해자 중 10%가 조선인이란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며 “학교에서 원폭관련 교육을 받았지만 조선인 피폭자나 식민지배의 참상에 대해 배운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 뒤 이치바는 처음으로 건강수당을 받을 수 있는 자격증 격인 건강수첩 취득 소송을 냈던 한국인 원폭피해자 손진두씨와 한국인 피폭자에게도 수당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낸 곽기훈씨, 그리고 최근 미쓰비시 징용 원폭피해자 이근목씨의 위자료 청구소송 등을 도와 승소를 끌어냈다. 그는 “1970년대 한국인 피폭자들과 함께 일본 당국을 찾아가면 차대접조차 않고 한-일 협정에서 다 해결된 사안이니 한국 정부를 찾아가라고 되돌려보냈다”며 “지금도 일본 정부의 근본자세는 변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지난해 이치바는 일본 정부가 2003년 숨진 원폭피해자 박원경(당시 58살), 정한년(당시 79살)씨 등 2명의 장례비를 지급할 것을 요청하는 행정소송을 유족들을 도와 일본 오사카 지방법원에 냈다. 일본인 피폭자들에 대해서는 19만엔의 장례비를 지급하면서 일본외 거주 피폭자에게는 한푼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장례비조차 한국인을 차별하고 있다”며 “장례비가 피폭자들의 고통받은 삶에 대한 위로의 뜻이라면 더 큰 고통을 감내했던 한국인 피폭자들부터 지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생존해 있는 2500여명의 한국인 원폭피해자 중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아직 일본 정부로부터 건강관리 수당을 받지 못하는 800여명이 혜택을 받게 하는 것도 주요 관심사다.

이치바는 “일본 정부는 원폭피해를 부각시켜 스스로를 전쟁의 피해자로 덧칠하면서 수천만명 아시아인의 목숨을 앗아간 가해 사실은 외면하고 있다”며 “과거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 없으면 역사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을까 두렵다”고 지적했다.

대구/글·사진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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