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풀뿌리민주주의 리포트(2)]



흑인 대통령, 풀뿌리시민운동가 대통령 그리고 여자들이 더 좋아하는 대통령 “오바마”





























Columbia University의 사범대학에서 운영하는 Community English Class. 내가 영어를 배우는 곳이다. 지역사회를 위한 프로그램이다보니 남편따라 미국 온 주부들이 많이 듣고 가끔은 이렇게 아이들을 데리고 오기도 한다. 폴란드 부인이 데리고 온 아들. 뒤편 스크린 옆에 서 있는 사람이 선생님인 사라. 오바마의 열성팬이다. 사실 여기에서 수업 듣는 거의 모든 여성이 오바마의 팬이다.

오바마는 왜 여성에게 더 인기 있는가?

최근 한 자료에서 흥미로운 통계를 보았다.
(뉴욕타임즈 11월5일자. 출구조사로 본 “2008년 대선 결과”▷Election Results, “Exit Polls” 바로가기)

미국 남성은 오바마 49%, 매케인 48%를 지지했다. 아주 근소한 차이이다. 그런데 여성들은 56%가 오바마를 지지했고 매케인은 43% 밖에 지지하지 않았다. 무려 13%의 차이이다.
또 한가지. 시골에서는 45 : 53으로 매케인이 앞선 반면, 도시 지역에서는 70 : 28 압도적으로 오바마가 이겼다. 재미있다.

많은 사람들이 흑인과 히스패닉이 오바마를 지지한 통계에 더 관심을 갖지만 나는 도시의 젊은 여성들이 오바마를 지지한 것에 주목한다.

도시 여성들이 오바마를 더 지지한다는 것은 뉴욕에 살면 피부로 느낀다. 내 영어 과목의 젊은 여선생님은 선거 다음날 흥분한 얼굴로 숙제를 냈다. 오바마 당선 연설을 들릴 때까지 들으란다. 아니 이런 황당한 숙제를? 덕분에 나도 구글에서 연설을 찾아 3-4번은 들은 것 같다.
그는 왜 여성에게 더 인기가 있을까? 여성들은 왜 그에게서 매력을 느낄까? 단지 매케인보다 젊어서? 그건 약하다. 뭔가 더 있는 것 같다. 뭘까?
























킹목사와 말콤X의 조우 장면. 같은 시대, 같은 고난을 겪었던 두 사람이지만 이렇게 스치듯 만나고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1930년대 “Cotton Club”, 1960년대 “King”과 “말콤X”, 그리고 2008년 “오바마”

어찌어찌 하다보니 뉴욕 맨하튼의 북쪽 할렘에 외롭고, 지친 흑인 영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체로 1920년대부터는 헬렘이 흑인들의 대표적인 주거지역, 상업지역이 된다.
이건 완전히 개인 의견인데 아프리카는 인문학이 발전한 곳은 아니다. 그리스나, 로마, 중국 같은 곳이 유서 깊은 인문학의 본 고장이고, 그런 곳에 가면 왠지 문자향이 느껴지는 듯하다. 대신 아프리카는 영성의 고향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퍼지는 원시의 리듬이나 가슴 저미는 고독한 목소리… 수만년 동안 그들의 몸에 베인 영성과 유연성으로 그들은 할렘에서 그들만의 음악을 만들어낸다. Jazz.























할렘에서 꽤 유명한 “세인트 닉” 재즈바. 10월 어느날 밤 동료들과 함께 갔었다. 지금 생각해도 행복한 밤이었다. 80살 먹은 할머니부터 7살 아이들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에서 재즈에 취했다. 지난 100년동안 재즈는 할렘의 지친 영혼을 씻는 맑은 샘물이었다.

국가가 술까지 먹지 못하게 하던 그 시절, 할렘의 흑인들은 Cotton Club(이 클럽도 처음에는 흑인들을 못 들어오게 했다나 어쨌다나)에서 루이 암스트롱의 연주와 노래에 몸을 실었을 것이다. 물론 가끔 몰래 술도 마셨을 것이고. 그렇게 처음 미국의 흑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음악을 통해서.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자녀들이(그 중에는 오바마 또래의 아이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젊은 시절 겪어야 했던 차별을 겪지 않고, 또 그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1963년 마틴 루터 킹)

“여러분과 저는 한 번도 민주주의를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위선을 보았을 뿐입니다… 어떤 아메리칸 드림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미국의 악몽을 경험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투표냐(BALLOT) 아니면 총알이냐의(BULLET) 선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1964년 말콤X)

성경에서는 세례 요한을 광야에서 외치는 자라고 표현했다. 히브리의 광야에서 율법에 포획된 딱딱한 유대교를 비판하며 새로운 종교적 메시지를 외치던 자.(신학적으로는 많은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요한을 해석합니다.)

킹목사와 말콤X도 그런 사람이었다. 외로운 광야에서 외치던 자들. 꽉 막힌 현실에서 오로지 외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자들. 그래서 그 외침은 절절했고 지금도 사람들의 가슴 속에 깊이 남아 있다.
1960년대 흑인민권운동을 통해 흑인들은 사실상의 참정권과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백인들에 의해 “재즈나 연주하는 흑인들”로 치부되던 그들이 이제 정치적으로 각성하게 되었고 많은 흑인 지도자, 정치인을 배출하기 시작한다.

125번가는 맨하튼 북쪽에 위치한 할렘이, 할렘이 아닌 남쪽의 나머지 맨하튼과 바리케이트를 치고 마주대하듯 동서로 가로지르는 큰 도로이다. 사람들은 이 125번가를 마틴 루터 킹 거리라고 부른다. 이 도로는 할렘을 좌우로 나누며 남북으로 달리는 말콤X 거리와 만난다. 사실 이 두 사람은 정치적으로 그렇게 친하지 않았다. 많이 싸웠다. “이 과격한 이교도야!” “백인이 주는 대로 받아먹는 애완동물 주제에!” 그리고 두 도로가 딱 한번 만나듯 평생 단 한번 만났다고 한다.

킹목사와 말콤X의 시대로부터 한참이 지나 할렘의 흑인들도 재즈보다는 힙합을 더 많이 듣게 된 2007년 11월의 어느날, 오바마가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들고 처음 할렘의 125번가 아폴로극장에 와서 연설을 했다. 흑인 대통령 후보치고는 흑인의 정신적 고향이자 자신의 인생을 바꿨던 할렘에 꽤 늦게 온 것이다.

오바마가 다녔던 콜럼비아대학은 125번가 바로 아래에 있다. 감수성이 풍부한 20대 초반, 아름다운 콜롬비아대학에서 도로 하나 건너에 있는 완전히 다른 또 하나의 세상, 할렘의 폭력, 가난, 자조를 보면서 오바마는 깊은 뭔가를 느꼈으리라. 그 깊은 뭔가가 졸업 후 직장 생활도 잠시, 시카고로 건너가 흑인 풀뿌리운동에 뛰어 들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깊은 뭔가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나 하나는 백인 같은 흑인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우리가 행복할까?”

40년전, 광야에서 얻어맞고 이를 갈며 킹목사와 말콤X가 외쳤던 예언처럼 “투표”로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의해 평가”받아 흑인이 대통령이 되었다. 그의 예언자들이 매일 같이 맞고, 조롱당하고, 협박당하고 종국에는 총을 맞고 죽어간 반면, 오바마는 사람들의 축복과 환희 속에서 대통령이 되었다.

예언자들이 그의 몫까지 맞았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그가 가지고 있는 통합의 리더십 때문이리라. 그는 아프리카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서, 인도네시아와 하와이에서 자랐으며, 인도네시아계 형제들과 함께 외할머니의 손에서 교육을 받았다. 다양한 것들을 내면에서 통합하고, 그것들과 공존하며 살아야 했다. 그에게는 어려운 길을 걸었던 자가 가지는 통합의 에너지가 있다. 사람들도 그걸 느낀다.

“다른 흑인정치인과 이야기를 하면 내가 점점 백인이 되어가는 느낌인데 그와 함께 일을 하면 내가 백인임을 잊게 된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있다. 이게 통합의 에너지다.
그건 그가 순수 백인 혈통이 아니기 때문에 가지게 된 선물이리라.






















지지자를 위로하고 있는 오바마. 글쎄 사진만 봐서는 어떤 사연인지 알 수 없다.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 많은 미국인들이 그의 품에서 울고 싶을 것이다. 대통령하려면 품이 참 넓어야겠다.
풀뿌리운동가(Community Organizer) 오바마

시카고 남부로 건너간 24세의 오바마는 풀뿌리운동을 시작한다. 사실 시카고는 미국 현대 풀뿌리운동의 고향이라고 할만하다. 많은 훌륭한 풀뿌리운동가들이 배출되어 왔고 다수의 저명한 풀뿌리조직들이 있다. 그곳은 철강산업에 종사하는 흑인 블루칼라들이 밀집된 지역인데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이 약해지면서 지역사회 자체가 와해될 위기에 처했다. 그래서 풀뿌리단체들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를(DCP-Developing Communities Project) 추진하고 있었고 오바마가 그 프로젝트의 활동가로 일하게 된 것이다.

연봉 13,000불에, 활동에 필요한 차 구입비로(아마 중고차였을 것이다) 2,000불을 받고 고용된 오바마는 3년간 그 활동을 한다. 오바마는 이 시기가 자기의 삶을 결정했다고 고백했다.


























옆집 형님 같은 오바마. 저 사진을 보면서 문득 그와 짜장면 같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꼽빼기에 단무지 왕창~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바로 여기, 바로 이 지역에서 진정한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나는 이 공동체, 바로 이 조직에서 여러분과 함께 일하면서 나의 소명을 발견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돈을 버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내 삶이 얼마나 훌륭한가는 내가 얼마나 공공에 기여했는가임을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몇년전 DCP 대회에서 한 연설 중)

나도 도봉구에서 12년간 지역활동을 해왔다. 그 분야라면 꽤 안다. 시민운동도 여러분야가 있고 각 분야마다 저마다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참여연대처럼 사회의 특정 이슈에 대해서(많은 경우 정부 정책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애드보커시(Advocacy)형 운동은 감추어진 문제점을 찾아내고, 그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문제에 관해 적,아를 구별하여 전선을 치고, 여론을 주도하면서 상대를 압박하는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풀뿌리운동에서는(Community Organizing Movement) 주민을 임파워링하고(Empowering), 주민들이 가진 능력을 공동체(Community)로 끌어내서, 파편화된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복원하고, 공동체(Community)를 치유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이 둘의 차이에 관해 좀 더 쉬운 예를 들어 볼까?

오바마와 노무현은 둘 다 법률가에 연설의 달인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연설의 패턴은 다르다. 노무현은 좀 쌈닭 같다. 나와 다른 이의 차이점을 아주 쉽고 정확하게 구별해내서 대중들에게 감성적으로 제시한다. 그래서는 선택하라고 이야기한다. 상대방이 느끼기에는 한번 덤벼보지, 그래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뭐 이런 느낌일 것이다.

오바마는 웬만해서는 남보고 뭐라하지 않는다. 강력하지만 온화하게 자신의 비전을 제시하고 함께 가자고 한다. 그건 사람의 에너지를 끌어내는 전형적인 풀뿌리의 방식이다. 특히 그는 잘 듣는 타입이고 매우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과 공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건 풀뿌리 활동가의 기본적인 자질이다.

하버드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다시 시카고에 돌아와서 풀뿌리 변호사로 활동했던 시기에, 그가 지역사회에서 정치적으로 유명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150,000명이나 되는 새로운 유권자를 등록시킨 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분쟁을 싫어하고 언제나 탁월한 통합의 정치력을 발휘한 때문이라고 그 시기 오바마를 보아왔던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진술한다.

이렇듯 오바마는 풀뿌리로부터 자신의 정치적 특성들을 만들어갔다. 선거 운동 내내 그 당시의 풀뿌리조직과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했다. 물론 선거운동 방식도 풀뿌리방식을 많이 차용했다. 자신의 캠프 사람들에게도 여러 차례 “정치가 아닌 운동을(Not Politics But Movement)”이라는 말을 했다. 풀뿌리운동의 인연 때문에 그가 좌파단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공격을 받았을 때도 그는 사실을 부인하기보다는 정면으로 응수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풀뿌리 활동을 부인하면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무엇보다도 미국 국민들은 선거운동 내내 오바마로부터 적대감보다는 통합의 감수성을 느꼈다. 상대편 부통령 후보인 페일린의 미성년자 딸이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한 문제가 터져 나왔을 때 “그 문제는 사적인 영역이므로 선거이슈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의 미들네임이 “후세인”인 점이 공격을 받자 문제를 피하지 않고 다루되 “우리 부모님이 내가 미 대통령 선거에 나올 줄 몰랐나 보다.”라고 말하며 ‘내 이름이 현재의 나를 규정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부드럽게 전달했다. 그리고 1년에 걸친 선거 운동 동안 수도 없이 “Yes, we can.”이라고 외치며 지친 미국 사람들에게 힘을 불어 넣었다.(Empowering)

어떤 경우에도 ‘자신이 누구인가?’라는 문제에서는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지만 그걸 상대방을 공격하면서 만들어내지는 않았다. 누군가 ‘온화한 정면돌파’라고 표현한 이 방식은 전형적인 풀뿌리의 방식이다.

그래서 난 그를 풀뿌리대통령이라고 말하고 싶다.


치유의 대통령이 왔다

편안한 기운이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 있다. 웃는 얼굴에 예수님이 있고, 뭔가를 깊이 서원하는 모습에 부처님이 있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은 이미 자기 안에 하나의 평화가 있기 때문에 세상도 쉽게 평화롭게 한다.






















부시는 군인과 함께 너스레는 떠는 장면이 잘 어울린다. 이건 절대 비꼬는 것이 아니다. 정말 그럴 때 사진이 잘 나온다. 부시가 원래 너스레를 잘 떤다고 한다. 그런데 오바마는 보통 사람들과 껴안고 있거나 대화하는 사진이 정말 잘 어울린다. 사진만 봐도 그들 사이에 마음이 교류하는 것이 느껴진다.

부시의 시대에 우리는 선택을 강요받았다.
내 친구가 될래? 적이 될래?
세상은 둘로 나뉘었다. 그렇게 으르렁거리는 사이 삶은 더 팍팍해졌다. 미국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세상살이에 상처를 받았다.

그래서 치유의 대통령을 뽑았다. 오바마가 말한 “변화의 희망”은 “치유의 희망”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정치적, 사회적 치유를 기대하고 오바마의 변화가 그곳을 지향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가 가진 통합의 능력에서 치유의 가능성을 본 것이다. 난 그 때문에 여자들이 더 오바마를 지지했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의 감성과 닮았기 때문이리라. Cow-Boy의 시대가 가고 치유의 시대가 도래함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마초보다는 따뜻한 사람에게서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리라.

11월5일 선거 다음날 아침.
학교에 가려고 뉴욕 지하철을 탔다. 뉴욕의 지하철은 더럽고 후지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서민들이 많이 이용한다. 백인보다는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이 더 많이 탄다는 뜻이다. 뚱뚱한 흑인 아저씨와 멋진 히스패닉 청년이 좌석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몸에 여러 가지 치장을 한 흑인 아줌마가 들어와 둘 사이에 앉는다. 그리고는 신문을 편다.

일면에 대문짝만하게 오바마 당선 기사가 실렸다.

우와! 환해지는 얼굴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모르는 사람끼리 이야기를 시작한다.

“당신 당선 연설 들었소? 난 듣다가 눈물을 흘렸다오.”
“야~ 나 정말 열심히 선거운동 했거든요. 오바마가 나에게 상 줘야 하는데…”
“누가 이런 농담을 하더라고요. 정말 재밌는데 부시가 말을 타고 가다가…”

지하철이 정말 시끄럽고, 음~ 내 영어가 쪼끔 부족해서 실제 이런 말이 오갔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앞에 서 있는 백인 남자도 모른 척 하지만 재미나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표정이다. ‘내 생각도 그래요, 미국이 뭔가 새로워졌으면 좋겠어요…’그런 미소를 짓고 있는 듯하다.
오바마의 치유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의 성공을 진심으로 빈다. 쉽지 않겠지만…



* 한인유권자센타 김동석소장님과 (주)캠페인포스 김헌태님이(정치 컨설턴트) 도움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